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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힘드네요"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서 만난 천사: 사례관리) 2부

  • 동사례관리
  • 통합사례회의
  • 게이트웨이
  • 1인중장년가구


전입온 지 1~2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크고 작은 소란들 동주민센터에 와서 본인이 신청하겠다고 한 서비스를 갑자기 신청 취소하겠다며 소리 지르고 신청서를 박박 찢어렸다던가, 본인만 후원품을 주지 않았다고 주민센터에 전화를 수십 통 하여 후원연계 담당자가 업무를 제대로 할 수 없도록 한 것, 주민들이 자기 욕을 하고 다닌다고 화를 냈었던 것, 수차례의 상담거부, 방문 거부 등등 로 모든 복지업무 담당자들에게 이미 유명인이 되어있었던 이OO님이 이렇게 외부인과의 관계형성 및 교류를 어려워 한 것도 다 사연이 있었다는 것을 가정방문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사실 내가 주민센터에 발령을 받은 지 한달여 동안 이OO님은 단 한번도 주민센터에 내방하신 적은 없다. 다만 잦은 빈도와 당황스러운 민원거리(?)를 전화로 문의하고 요청했다. 가정방문을 하겠다고 하면 괜찮다고 전화를 먼저 끊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대상자에게 연락을 하면서 이 대상자를 꼭! 만나야 겠다는 진심이 수화기 밖 너머로 전달됐던 것인지 이OO의 집 가정방문은 참 극적으로 성사가 되었다. 물론 불시에 방문해서 지나가던 길에 들렀다고 얘기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런 식으로 대상자와의 첫 만남을 우연으로 가장한 필연으로 만들고 싶진 않았다. 워낙 이OO님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았던 터라 방문간호사 선생님과 함께 어떻게 하면 방문을 잘 하고 돌아올 수 있을지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까지 마치고 벨을 누르고 집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보통 정신질환이 있는 중장년의 1인가구의 생활실태는 성별과 상관없이 매우 열악한 편이다. 임대아파트에 사는 경우는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LHSH전세임대로 대도시에 거주하는 수급자들은 정부가 지원하는 전세임대의 보증금으로 방 한 두칸 짜리 지하방을 얻기도 쉽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청결을 유지한다고 해도 해충 유입을 막기 어렵고 습도 조절이 되지 않아 집안 곳곳에 곰팡이가 피어 있는 것이 보통의 현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들어간 이OO님의 집은 정말 먼지 한 톨! 없이 아주 깨끗했으며 OO락스의 향기(?)가 집안 곳곳에 철저히 배어 있었다. 그리고 우리를 맞아주셨던 이OO님의 해맑게 웃는 모습에 간호사선생님과 나는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이래서 사람은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현관에 들어서자 마자 어떻게 이렇게 청소를 잘하시냐!?”는 말을 여러 번 반복하며 얘기하자 수줍게 웃으시며 청소가 취미라고 하신 이OO님은 이렇게 청소를 하고 나면 본인이 가지고 있던 모든 더러움이 다 씻겨져 내려가는 느낌을 받는다고 표현하셨다.


OO씨가 이렇게 사람에게 거부감을 갖게 된 것은 사업실패, 오랜 기간 교제하던 남자의 배신과 사기 행각 등 다양한 위기가 한꺼번에 닥치면서 몸도 마음도 상처만 남고 사람들을 믿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하는 생각에 자살시도도 여러 번 했었지만 그래도 언니가 도와줘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고 우리 동으로 이사 온 것도 언니가 근처에 살아서 그 근처에 전세임대로 집을 구했다고 했다. 본인이 바보 같아서, 본인이 머리가 나빠서, 본인이 순진해서라는 자책이 섞인 말로 지난 일련의 불행들을 모두 자신 탓을 하시던 이OO님에게 사례관리를 통해 지금 닥쳐있는 위기들을 함께 극복해보자고 권유했다.





대상자들에게 사례관리를 설명할 때 내가 주로 접근하는 방식은 나 자주 만나볼래요?” 이다. 복지플래너인 내가 당신과 당신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고 또 자원을 살피면서 지금보다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함께 노력 할 테니 나좀 자주 만나자라고 설득을 시도한다. 동 주민센터에 오며 가며 매일 들르시는 복지대상자들은 이미 마음의 문이 열려있어 주민센터 직원들 뿐 아니라 주변의 지인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시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소수의 친인척 외에는 왕래가 없이 사회적으로 고립된 1인 중장년 가구 중 정신질환까지 있는 케이스는 타인과 교류를 쉽게 하기 어려운 대상이라고 판단을 한다. 이런 경우 라포를 형성한 사례관리자를 주축으로 대상자에게 통합적인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며 현실적인 방법이다. 사례관리의 직접적 수행과 관련하여 민간사회복지기관들이 훨씬 더 전문적이고 충실하게 사업추진을 하고 있지만 문제는 이러한 대상자들을 처음 발견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사회복지급여와 서비스를 총괄하는 지자체의 읍면동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사례관리의 게이트웨이를 담당해야 하는 곳이 읍면동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공공과 민관의 통합사례관리 및 회의가 반드시 필요한 것도 바로 이 지점에 모두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OO님 역시 다양하고 복잡한 욕구를 가지고는 있지만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신체적, 사회적, 기능상의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스스로 본인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일단 이전에 교제를 했던 남성으로부터의 각종착취를 당했기 때문에 남자에 대한 불신이 상당히 강했다. 그래서 남성 전담공무원이나 남성 사회복지사와 상담하는 것을 매우 힘들어 했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이 상담내역에 자세히 기술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오기 이전에 대상자를 담당하던 복지플래너가 남성이어서 매우 날카롭게 반응했고 일련의 크고 작은 소란이 일어났던 것이다. 또한 자살시도 이후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했었고 치료를 받기는 했었지만 아주 급성기만 넘기고 나서 현재는 치료를 중단한 상태라는 사실도 인지하게 되어 정신과 치료를 적극적으로 권유했다. 오랜 기간 지속되었던 정신적, 정서적 학대행위에 대한 적절한 치료가 완벽히 되지 않았던 이OO님은 자기보호능력이 거의 상실되어 있었기 때문에 불안정한 심리상태였을 뿐 아니라 삶의 희망도 매우 희미한 상태였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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