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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적 삶의 원리로서의 공동체와 돌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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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적 삶의 원리로서의 공동체와 돌봄2

 

 

대증요법(對症療法)화된 돌봄서비스

현재는 어떠한가? 전화하고 등록해서 일면식도 없는 이에게 돌봄서비스를 받는다. 수요자와 공급자는 철저히 분리되어 있고, 효율을 위한 규격화와 복지재정의 부족을 보완하고 일자리를 늘리는 산업화의 방식으로 사회서비스는 이루어진다. 공적영역에서 개별적, 계량적 욕구로 규격화 된 사회서비스의 총량이 늘어나는 것은 대증요법(對症療法)에 가깝다. 대증요법은 발생한 문제와 욕구에 대한 직접적인 개입이다. 사후적이고 문제 대응적 접근이다. 서비스의 총량이 증가하는데 고립되는 사람이 증가하는 건 대증요법화 된 제도의 문제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각종 돌봄, 육아 사업들은 사실상 대증요법에 가깝다. 주민의 욕구와 이해, 주민들의 관계망에서 출발하기 보다는 공급자의 시선과 전문성에 의존해서 규격화된 방식, 소득기준에 따른 빈곤정도에 따라 공급자의 시선으로 주민을 대상화 시키는 방식이다. 육아종합지원센터를 통해 보육반상회, 보육반장과 같은 육아에 대한 정보제공과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드림스타트를 통해 취약계층 아동과 가족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대증요법의 차원에서 실시되고 있다. 대증요법만으로는 육아와 돌봄의 산적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버겁다. 육아와 돌봄의 수요가 100명이라면 2~3명에게만 제공될 수 있는 대증요법이 필요충분으로의 효과가 있다고 볼 수 있는가? 이러한 논지가 돌봄노동의 사회화를 부정하거나 사회적 저평가를 합리화하려는 것은 아니다. 대증요법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대증요법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라도 체질개선에 대한 근본적 고민이 필요하다는 논지이다. 체질개선은 사전적이고 예방적 접근이다.

 

전통적으로 돌봄서비스는 가정과 지역사회에서 이뤄져왔던 사적이고 정적인 측면이 강한, 가장 친밀한 관계에서 이뤄져왔다. 질 좋은 서비스란 특정의 기술과 자격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었고, 서로에 대한 신뢰와 인격적 관계에서의 상호호혜성을 갖는 것이 중요하였다. 가정에서와 같이, 이웃들 간에 누구나 무엇인가를 해줄 수 있는 의지와 관계가 있다면 질 좋은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대증요법을 통해 실시되는 사업들은 돌봄노동을 서비스로 상품화하고 자격요건과 직무의 표준화를 시키고, 계약직을 양산시켰다. 그것은 일자리를 위한 것이지, 사회서비스의 보다 나은 전문적 실천을 위한 것은 아니다. 돌봄노동의 사회화는 돌봄공동체를 중심으로 재편될 수 있다. 체질개선이 필요하다. 그것이 서비스 범위의 제한성과 전문성의 한계를 갖고 있는 대증요법의 효과성을 극대화 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돌봄서비스와 공동체

대증요법으로서 돌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건 일종의 모순이다. 서비스 총량이 증가하지만, 고립된 채 홀로 아이를 양육하는 양육자가 증가하고 있는 현상이 이를 반증한다. 정책과 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 사실, 정책은 Top down의 성격을 지닐 수 밖에 없다. 사실, 공동체 돌봄은 정책은 Top down으로 Bottom up을 이루겠다는 일종의 동그란 네모와 같은 형용모순일 수 있다. 그러나 모순은 변화의 시금석이며 원동력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모순이 변증법적으로 진화하기 위해서 Top down의 내용이 어떻게 바뀔 수 있을 것인가이다. 행정 혁신이 불가피하다.

 

돌봄서비스 또한 마찬가지이다. 공동체 정책이 대증요법 중심에서 체질개선 중심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통해 제도와 공동체가 상보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면 돌봄서비스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재편될 필요가 있다. 공공을 통해 제공되는 아이돌보기 서비스”, 취약계층을 위한 생활자원서비스가 돌봄의 전부는 될 수는 없다. 시장을 통해 산업화의 맥락에서 제공되는 사회서비스가 돌봄의 대안이 될 수는 없다. 공동체에 기반한 돌봄서비스, 돌봄공동체에서 태동되는 마을을 위해서 정책 입안자들은 기존의 지역사회와 마을을 돌아봐야 한다. 섬세한 눈길로 씨앗이 무엇인지? 이 싹들을 잘 키우기 위해 지원해야할 습도와 온도, 물의 양은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들여다보고 이해할 수 있는 통찰력이 필요한 것이다.

 

복지국가가 공동체를 통해 견인되듯이 제도의 공공성(public)은 주민의 공공성(common)을 통해서만이 담보될 수 있다. 충분하지 않은 대증요법적인 제도와 정책으로 많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캠페인성 구호를 외칠 것이 아니라 돌봄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정책 입안과 제도화를 추진해야 한다. 모일 수 있는 공간, 관계에 기반한 육아돌봄, 당사자들의 모임을 지원하는 지역사회 지원체계 구축 등 주민이 서비스의 수요자에만 머무는 것이 아닌, 관계망에 근거하여 자생적인 소규모 단위의 돌봄공동체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촉진해야 한다.

 

미션은 원래 있는 것이고, 비전은 찾는 것이다. 공동체는 원래 있는 것이고, 그 미래상은 찾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척박한 땅, 갈라진 틈에서 원래 존재했던 씨앗을 찾는 것과 같다. 씨앗으로써, 또는 작은 열매들을 맺고 있는 이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이들이 돌봄생태계를 구축하는데 있어 그 성과를 인정하고 잘 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지원하는 것이 정책을 입안하는 사람들이 해야 할 구체적 고민이고 핵심적 역할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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