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지관 사회사업 By 김세진
- 2024-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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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슬로 다섯 욕구로 살펴본 ‘복지 서비스’의 한계
심리학자인 에이브러햄 매슬로는 우리 인간의 행동에는 반드시 심리적 배경이 있으며,
그 바탕에는 ‘욕구’가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매슬로의 동기이론 > (유엑스리뷰, 2018)에서는 그런 인간의 욕구를
생리 욕구The Physiological Needs, 안전 욕구The Safety Needs, 애정 욕구The Safety Needs,
자존 욕구The Esteem Needs, 자아실현 욕구The Need for Self-Actualization, 이렇게 다섯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이 다섯 욕구는 피라미드 모양으로 층위를 이루고 있습니다.
피라미드 제일 밑에 생리 욕구가 있고, 그 위에 안전‧애정‧자존‧자아실현 욕구가 순서대로 위치합니다.
아래에 위치한 욕구를 해결하면, 그 다음 욕구로 마음이 옮겨갑니다.
이미 어느 정도 해결한 욕구는 그 사람을 더는 자극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인간은 다음 욕구를 쫓아가면서 성장하게 됩니다. 더 나은 욕구를 향하여 움직이게 하는 ‘동기’가 만들어집니다.
아래 욕구가 충족되면 그 위에 있는 욕구로 관심이 올라가고,
그렇게 욕구를 채워가며 상위 욕구를 이룸으로써
인간의 긍정적인 성격이 형성되는 모습을 ‘욕구 5단계설’이라고 합니다. (‘욕구 계층설’이라고도 합니다.)
특히, ‘자존 욕구’와 자아실현 욕구를 통해 사람은 누구나 ‘자기 뜻’으로 살고 싶은 존재라는 걸 새삼 확인했습니다.
또한, 인간 성장과 변화를 도우려면 애정‧자존‧자아실현과 같은 상위 욕구를 이루고 누리게 거들어야 함도 다시 확인했습니다.
여기서 우리 사회복지 현장에서 주된 방법으로 진행하는 ‘복지 서비스’의 한계가 보였습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사회적 약자를 ‘생리와 안전의 욕구’가 부족한 사람으로만 여겼습니다.
따라서 그런 당사자에게 부족한 결핍 욕구를 복지 서비스를 지원하여 충족하게 하는 방법을 사용하여 왔습니다.
그런 지원이 필요한 때가 있었고, 통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제 사회사업 현장에서 만나는 당사자의 어려움이 전과는 달라졌습니다.
그 고통이란 게 더는 물질 문제가 아닙니다.
외로워하고, 마음이 어지럽고, 속 편하게 나눌 사람이 없으며, 우울한 감정이 깊어져 질병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물질로는 충족할 수 없는 정신의 어려움으로 고통 받고 있습니다.
위 그림처럼, 완전한 인간으로 뜻있게 살아가려면 다섯 욕구 충족을 고루 경험해야 하는데,
사회사업 현장에서 거드는 일이 물질 영역의 지원 이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애정 욕구. 애정 인정 우정 사랑을 경험하려면, 상대가 있어야 합니다.
만나는 사람이 있어야 이런 욕구를 경험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는 복지 서비스로는 불가능한 영역입니다. 복지 서비스에서 애정이나 인정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와 인격적이고 인간적인 만남에서만 충족할 수 있는 욕구입니다.
다른 이와 어울려야지만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가 더욱 ‘관계’로써 도와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자존 욕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존 욕구는 자기 존재를 인정받는 욕구인데, 이 역시 ‘나’를 인정해주는 상대가 있어야지만 채워질 수 있는 욕구입니다.
자아실현 욕구 또한 그렇습니다. 자아를 실현하였을 때, 즉 무대에 올랐을 때 박수 보내는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뜻을 이루었을 때 잘했다 수고했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자아실현 욕구 충족의 충만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음악가는 음악을 만들고, 화가는 그림을 그리고, 시인은 시를 써야만 궁극적인 행복을 얻을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의 본성에 진실해야 한다. 이것이 자아실현의 욕구다.’
「매슬로의 동기이론」 (에이브러햄 매슬로, 유엑스리뷰, 2018)
이제 당사자는 누구이며 무엇을 이루고 누리고 싶어 하는 지에서 질문을 시작할 때입니다.
나아가 내가 만든 음악을 누군가 들어주고, 내 그림을 누군가 봐 주고,
내 시를 누군가 읽어주어야 이런 성취의 기쁨이 와닿을 겁니다.
더는 물질을 전달하는 정도의 지원으로써 우리 시대 어려움을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문제 해결 실마리는 당사자가 다양한 관계의 그물에 놓이게 하는 데 있습니다.
사회사업은 관계로써 이뤄가는 일입니다.
누군가와 만나고, 해볼 만한 일로써 때때로 함께하고, 이런저런 공동체에 속하여 기여하는 일이야말로
사회사업이 주력해야 하는 일입니다.
인정욕구는 성장의 원동력이 됩니다. 예를 들어, 이제 막 걷기 시작할 무렵에는 걸음을 떼기가 무섭게 넘어지고 맙니다.
하지만 부모님에게 “어머! 잘 걷네!”라는 칭찬을 들으면 아이는 언제 울었느냐는 듯 웃습니다.
칭찬을 들은 아이는 넘어져 얼굴에 상처가 나서 아플 텐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도전합니다.
이렇게 어린아이들도 성장욕구나 인정욕구에 이끌려 걷다가 넘어지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고,
‘와! 나 걸었어!’라고 말하는 듯한 얼굴로 웃으며 부모님을 봅니다.
철봉 거꾸로 매달리기에 성공하면 “이것 좀 봐!” 하고 소리치며 거꾸로 매달려서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습니다.
저만 해도 어렸을 때 동아리 활동이 끝나고 학교에 혼자 남아서 철봉 거꾸로 매달리기를 연습하다가,
지나가던 선생님께 “잘하고 있네”라는 칭찬을 들으면
집에 가려고 마음먹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더 열심히 연습하고는 했지요.
우리는 이렇듯 ‘인정’받고자 여러 방면에서 도전하고, 노력하고, 그렇게 성장해왔습니다.
학교에서는 좋은 성적을 거둬서 칭찬받겠다는 일념으로 더 열심히 공부합니다.
물론 성적이 오르는 기쁨이나 모르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희열이 공부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선생님에게 칭찬받고 싶다’, ‘부모님에게 칭찬받고 싶다’라는 생각에 힘을 내기도 하지요.
사회에 나오면 또 어떤가요? 회사에 입사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유능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
‘상사나 선배에게 인정받고 싶다’라는 마음으로 노력합니다.
업무에 익숙해지면 성장욕구가 채워지고, 더 노력하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지만
‘얼른 한 사람 몫을 해내서 인정받고 싶다’라는 욕심이 업무 역량 성장에 촉진제 역할을 하는 건 분명합니다.
이렇듯 인정욕구에서 비롯된 행동은 절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인정욕구가 꼭 필요합니다.
「인정욕구」 (에노모토 히로아키, 피카, 2023)
사회에서 범죄를 저지르면 감옥으로 보내지고, 감옥 안에서 또 죄를 저지르면 독방에 있어야 합니다.
인간에게 주는 최고의 형벌이 바로 혼자이게 하는 겁니다.
한국 사회에서, 특히 서울에서 고립되어 홀로 외롭게 살아가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형벌을 받는 것과 같은 고통 속에 놓여있는 겁니다.
이런 사회적 배제를 경험한 사람을 도울 때, 그를 동굴 밖으로 나오게 하는 일은
당사자가 잘해왔거나 잘할 수 있거나 잘해보고 싶은 일을 제안하는 데 있습니다.
사회사업가는 그런 일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곡선의 시선’에서 만남을 시작합니다.
당사자도 자신을 문제 너머로 보려 애쓰는 사회사업가를 신뢰할 겁니다.
당사자의 변화와 성장을 위해서라면 인정認定욕구가 필요하다면,
인정받을 만한 일들이 무엇인지 탐색하는 일이야말로 관계의 시작입니다.
더하여 그렇게 해볼 만한 일들로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데까지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그 가운데 성취와 지지와 격려를 경험합니다. 이때 존재와 인정認定을 느끼며 삶에 생기가 돋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삶의 방향이 달라질 겁니다.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이 없고, 잘한 일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데도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사람은 가족이나 친구 직장 이웃 같은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그 관계들이 자기만의 육각형을 만들어 준다. 태어나면서부터 이 관계가 무너진 사람들도 있지만,
안정적으로 살아오다가 어느 순간 보니 관계가 무너져 있는 사람들도 있다.
실직이나 이혼 또는 가족의 죽음이나 친한 친구의 배신 때문에.
그리고 빚을 지거나, 사고를 당하거나, 병에 걸리거나, 정신적인 충격을 받는 등
각자의 이유로 원래 가지고 있던 관계의 육각형이 무너진다.
어느덧 무너진 자신도 발견하게 되는데, 무너짐은 그를 지탱하고 있던 관계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육각형을 이루는 한두 개의 선이 허물어지면서 자신의 육각형 자체가 허물어진 것이다.
동시에 자신이 사회에서 해왔던 역할도 무너지게 된다.
우리가 하는 일은 다시 한번 그 사람의 육각형을 복원하고 생성하는 일이다.
구조적으로 안전하고, 그 안에 있으면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안전한 자기 자신을 찾게 하는 육각형.
그 방법은 어디선가 무너진 관계들을 하나씩 회복하게 돕는 것이다.
관계는 무너졌던 과거의 관계가 아니어도 된다.
허물어진 선들이 다시 이어질 때 이전의 육각형 혹은 새로운 육각형을 만들 수 있다.
자기가 왜 무너졌는지도 몰랐던 사람들은 어느 순간 안전함과 안정감이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핵사곤 프로젝트」 (윤정아 강민지 외, 구슬꿰는실, 2024) 이가영 선생님 ‘맺는 글’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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