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가공부 By 조성우
- 2025-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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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이야기
2000년대 초반, 복지관에서 컴퓨터실이 인기 있던 시절이 있었다. 사회복지사 혹은 컴퓨터 강사들은 모니터 앞에 앉아 주민들에게 "마우스는 이렇게 클릭하는 거예요~"를 반복하던 그 시절을 기억할 것이다. 그때 우리가 다루던 ‘디지털 격차’는 명확했다. 누가 컴퓨터를 가지고 있는가, 누가 스마트폰을 쓸 줄 아는가. 정보는 곧 기회였고, 기회를 잡지 못한 사람들은 서비스에서, 사회에서, 심지어 가족 관계에서도 뒤처지기 시작했다.
이 격차는 단순히 기술의 유무 문제가 아니었다. 스마트폰을 쓰지 못하는 노인은 손녀의 사진조차 받아볼 수 없었고, 인터넷이 익숙지 않은 청년은 대출 신청조차 어렵게 느껴졌다. 사회복지사들은 이 디지털 소외가 경제적 빈곤과 정서적 고립을 동시에 심화시킨다는 사실을 일찍이 알아챘고, 그래서 전국의 복지기관이 디지털 리터러시 수업의 일선 전방이 되었다.
📌 새로운 디지털 격차, AI 활용 격차
늘 그렇듯 시대는 놀랍도록 빠르게 진화했다. 이제는 스마트폰과 인터넷은 더 이상 대화의 주제가 되지 못한다. 요즘은 “챗GPT 써봤어?”, “그건 AI로 해결 가능하지 않아?” 같은 말이 일상 대화에 등장한다. 기술이 한걸음 나아간 만큼, 격차도 한층 더 깊어졌다. 이른바 AI 활용 격차다.
AI 활용 격차는 단순히 '신기술을 모른다'는 문제가 아니다. 더 근본적인 이슈가 숨어 있다. 예전에는 ‘컴퓨터 없는 삶’이 문제였다면, 이제는 ‘AI 없는 삶’이 비효율적인 삶, 기회가 줄어드는 삶이 되어버렸다. 복지 정보를 AI 챗봇에게 묻지 못하면, 타이밍을 놓친다. 대학 졸업자는 AI 기반 채용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으면, 서류에서 이미 탈락한다. 자녀가 AI로 숙제를 하는 세상에서, 부모가 그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교육 격차는 세대를 뚫고 더 커진다.
즉, AI를 활용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격차는 단순한 기술 차이를 넘어 삶의 구조와 기회의 지형을 완전히 갈라놓는다.
📌 사회복지사는 AI 활용 역량을 ‘임파워먼트’로 바라보아야 한다
AI를 도구로 쓸 수 있다는 건, 단순히 스마트해졌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곧 자기 삶을 선택하고 계획할 수 있는 권한과 힘을 가진다는 의미다. 사회복지 실천에서 오랫동안 강조되어온 '임파워먼트(empowerment)'의 개념이 이제 AI를 매개로 새롭게 확장되고 있다. 예전에는 “복지 수급 신청서를 직접 쓸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임파워먼트였다면, 이제는 “AI를 이용해 수급 자격을 스스로 확인하고 질문하는 것”이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자립이다.
그렇다면 사회복지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제는 '스마트폰 사용법' 수업을 넘어서, AI 도구와 대화하는 법, AI를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사고 방식을 클라이언트에게 가르쳐야 한다. AI 활용 교육은 단순한 기술 이전이 아니라, 클라이언트가 정보에 접근하고, 자기 삶을 다시 설계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 그러나 AI 종속의 위험에 직면할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덫이 하나 있다. 우리가 클라이언트에게 AI를 활용하라고 가르치다 보면, 어느 순간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건 GPT한테 물어보면 돼요.”
“앱이 알아서 해줘요.”
“요즘은 챗봇이 상담도 다 해줘요.”
이쯤 되면 뭔가 이상하다. 언제부터 인간의 생각을 AI에게 간편히 위임해버리는 문제도 불가피하게 공존할 것이다. 사회복지 실천의 본질은 사람을 도구에 종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도구를 통해 사람을 더 주체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만약 AI가 클라이언트의 사고를 대체하고, 자율성을 빼앗는 방향으로 작동된다면, 그것은 AI를 통한 진보가 아니라, 기계화된 복종일 뿐이다.
이 상황은 익숙하지 않은가?
과거 복지서비스에 지나치게 의존한 일부 클라이언트가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힘을 잃어버린 것처럼, AI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AI를 권한 부여의 도구로 사용할 것이지, 자율성 파괴의 변명으로 사용해선 안 된다.
📌 기술 중심 실천이 아니라, 인간 중심 실천으로
기술은 결국 수단이다. 사회복지 실천의 방향은 언제나 ‘기술을 잘 다루는 인간’이 아니라, ‘기술을 넘어서 삶을 잘 살아가는 인간’을 만드는 데 있다. 사회복지사의 진짜 임무는 클라이언트가 존엄을 유지하며, 성찰적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AI는 아주 유용한 도구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도구를 통해 얻은 능력이, 한 사람의 삶을 스스로 기획할 수 있는 힘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본질을 놓친 것이다.
📌 마무리하며
디지털 격차는 정보의 불평등에서 시작해, 빈곤과 고립이라는 사회적 문제로 번져왔다. 이제 새로운 디지털 격차인 AI 활용 격차는 ‘기술을 쓸 줄 아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삶을 스스로 설계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새로운 고민에 빠지고 말았다. 단지 도구를 가르치는 사람으로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그 도구를 통해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실천가가 될 것인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AI 시대의 사회복지사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정의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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