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지밖복지 By 노수현
- 2020-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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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사람, 처음 가보는 곳, 처음 먹어보는 음식에는 설렘이 있습니다. 경험하지 못한 새로움에 몸이 저절로 반응합니다. 새로운 자극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이 ‘설렘’이라면 반대편에는 ‘어색함’이란 감정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설렘과 어색함은 한 가족입니다. 다만 어떤 때에 어떤 방법으로 활용하느냐의 차이만 있습니다.
시대마다 주목을 받는 세대가 있습니다. 지금은 단연코 청년입니다. 오히려 지금은 너무 많이 언급되어 식상할 정도입니다. 경기도의 청년수당 논쟁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습니다. 청년 정책이 쏟아지고, 총선에서도 여야를 불문하고 청년을 외칩니다. 시대가 그렇다 보니 지역사회에서도 청년은 중요한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청년은 그동안 접해보지 않은 세대입니다. 우리는 독거노인, 요보호아동, 한부모가족, 저소득가정처럼 사회에서 낯설어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익숙합니다. 청년이라면 사회복지실습생이 전부였습니다. 청년은 우리에게 어색함과 설렘의 대상입니다. 그래서 고민입니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요?
우선 ‘설레임’으로 생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청년 대상의 사업을 시작하는 복지기관의 고민이 깊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담당 실무자의 고민입니다. 어르신팀, 가족지원팀은 들어봤어도 청년팀이 조직된 기관은 본 적이 없습니다. 아직은 기관 차원의 대응이라기보다 사업단위에서 실무자에게 맡긴다는 말입니다. 기관의 청년사업 경험이 없다보니 슈퍼비전을 받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설렘보다 답답한 마음, 어색함이 더 많습니다. 생각이 마음대로 바뀌지 않습니다. 슬플 때 슬픈 생각이 나는 법입니다. 그래야 건강에도 좋습니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것은 어렵지만 약간의 아쉬움을 긍정적인 해석으로 바꿀 수는 있습니다. 예를 들면 배고픔을 가득 채우지 못한 아쉬움을 여유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한 극한 배고픔에서 여유는 거짓말이지만, 다 채우지 못한 포만감은 여유로 해석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갑자기 청년 사업을 맡았고 뜻이 없는데 해야만 한다면, 앞으로 만나야 할 청년이 설레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어색한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어색함이 가득하면 앞으로 만날 청년에게 전달될 첫 번째 감정이 어색함이 됩니다. 어색함이 당연한 감정이라고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고, 앞으로 함께 만들어 갈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어색하지 않을까?’라는 소극적인 질문을 ‘어떻게 하면 설레일까?’라는 적극적인 질문으로 바꿔야 합니다.
청년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이 가지는 근본적인 두려움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불확실성에 있습니다. 우리는 모를 때 불안합니다. 알면 답답하고 화가 날 수는 있지만, 적어도 불안하지는 않습니다. 어색함을 대처하는 방법도 비슷합니다. 자주 만나면 어색함이 줄어들겠지만, 그 사이에 어색한 청년들이 모두 떠나면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직접 만나지 못한다면 간접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여행 가기 전 정보를 모으고 계획을 세우면서, 가보지 않은 여행지를 만나는 것처럼 말입니다. 청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어색함은 설렘에게 자리를 내줍니다.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서 답답하고 어색함이 늘어갈 때, 그대로 놔두면 남은 힘마저 모두 빼앗깁니다. 힘은 청년을 이해하는 것에 쏟아야 합니다. 여행을 준비할 때는 여행전문가보다도 더욱 치밀하게 정보를 수집하고 분류하고 정리하면서, 왜 새로운 사람과 사업 앞에서는 얼음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서울시청년청과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에만 접속해도 충분한 정보를 얻습니다. 혼자서 아무리 시간을 써도 만들지 못할 정보들이 이미 정책, 연구, 활동 자료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왜 청년이 중요한지? 청년의 현황 및 문제점은 무엇인지? 그간의 청년 관련 활동의 반성과 개선방안은 무엇인지? 청년에게는 어떤 특징과 욕구가 있는지? 청년 대상 프로그램의 사례와 결과는 어떠한지? 어쩌면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이 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이러한 정보를 넣고 생각하면 막연했던 불안과 어색함을 대신할 방법이 떠오릅니다.
과거에 정보는 생명력이 없었습니다. 우리나라 청년 현황 정보는 현시점의 결과물이 아닌 작년 조사 시점의 지난 정보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눈부신 정보화 기술의 발전은 정보를 실시간으로 살아 움직이게 만들었습니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전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화 사회 입니다. 조금만 시간을 들이면 깜짝 놀랄만한 자료들을 구합니다. 걱정할 시간을 정보 검색에 투자해야 합니다.
정보 중에서 가장 생명력 있는 것은 사람입니다. 양질의 정보는 사실 데이터보다 정보원, 사람에게서 나옵니다. 숫자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정보가 있기 때문입니다. 청년에 대한 기본 학습이 끝났다면, 청년에게 직접 물어봐야 합니다. 사전조사를 마친 기자가 인터뷰로 확인하고 더 많은 정보를 얻는 것처럼 말입니다. 직접 물어야 생명력 있는 정보를 얻습니다. 생명력 있는 정보가 가득해지면, 어색하고 답답했던 기억이 언제였나 싶게 설레게 됩니다.
재미 다음에 의미입니다.
사람은 재미가 있어야 모입니다. 몸이 편하고 재미있어야 반응합니다. 나를 불편하고 힘들게 하는 모임을 몸이 반길 리가 없습니다. 생존에 위협이 되는데 말입니다. 특별히 청년 모임은 이유 불문하고 우선은 재미있어야 합니다. 재미 다음에 의미입니다. 일단 재미를 확보했다면, 설사 의미가 없어도 최소한 재미는 남습니다. 반대로 의미로 시작하면, 의미도 재미도 없는 최악의 모임이 됩니다. 첫 모임이 마지막이 되는 뼈아픈 경험을 할지도 모릅니다. 재미는 치맥에 게임을 하면서 놀고먹는 것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진짜 재미는 참여하는 재미입니다. 듣는 강의보다 참여형 강의 만족도가 높은 이유입니다. 사람을 알아가는 재미, 말하는 재미, 먹는 재미, 만들어가는 재미, 작은 이벤트의 재미….재미에는 끝이 없습니다. 오히려 엄청난 재미보다 이러한 잔 재미들이 덜 부담스럽고 오래가는 법입니다. 청년 사업을 계획하기 보다 ‘어떻게 하면 모임을 재미있게 할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청년 사업에서 가장 어려운 과제이자, 시작점입니다. 이 산을 넘지 못한다면 내일은 없습니다.
장소가 만사입니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을 잘 선별하는 게 조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입니다. 청년은 장소가 만사입니다. ‘어떤 모임이냐?’ 보다 ‘어떤 장소냐?’가 중요합니다. 당위성과 얻어질 이득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장소가 멀면 귀차니즘이 발동해서 머뭇거리고 결국 모임을 포기합니다. 교통이 편리한 곳도 갈까 말까인데, 찾기 어렵고 장시간 걸어서 들어가야 한다면, 가볍게 포기합니다. 그렇다면 청년들에게 좋은 장소는 어디일까요? 쉽게 설명하면 인스타 각도가 나오는 곳입니다. 커피 맛만큼이나 카페 인테리어가 중요합니다. 보기에 좋은 것만 찾는 속물이란 의미가 아닙니다. 이미지에 강한 세대입니다. 어려서부터 스마트폰의 영상과 함께 자란 세대입니다. 자연히 이미지에 예민합니다. 특히나 산과 바다와 같은 자연적인 이미지보다 도시의 만들어진 이미지에 익숙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복지관은 청년 모임의 장소로 적절한 곳이 아닙니다. 전 아직 인스타에서 복지관 회의실을 본 적이 없습니다. 복지관 청년 프로젝트에 참여한 경험이 있습니다. 첫 모임의 장소로 복지관이 아닌 교통이 편리한 곳의 외부 장소를 추천했습니다. 다행히 관장님께서도 이해를 해주셔서 알라딘 서점을 빌려서 진행했습니다. 첫 모임의 어색함을 장소만으로도 줄일 수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청년모임을 기획하고 있다면, 내용만큼이나 장소 선정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본질은 같습니다.
그래도 어렵다면 쉽게 생각해야 합니다. 문제를 어렵게 생각하는 게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듭니다. 악순환입니다. 청년은 외계인이 아닙니다. 우리와 함께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물론 다른 부분이 있지만, 그런데도 본질적인 부분에서는 똑같은 사람입니다. 그 때문에 본질에 집중하면 근본적인 답이 나옵니다. 사람을 대하는 본질이 바로 ‘예’입니다. 우리가 예의라고 말하는 그것입니다. 사람을 예의로 대하면, 대상이 어른이건 청년이건 아이이건 통합니다. 사람대접해야 합니다. 사람을 사업의 수단으로 만드는 실수를 범하지 말고, 사람이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이 수단이 되면, 사람을 모으게 되고, 출석으로 체크하게 되고, 만족도로 평가하게 됩니다. 사업 조금 못하고, 실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수단으로 만들면 그건 안 됩니다. 그렇다면 출석한 사람 수로 돈을 받는 다단계 영업과 우리가 다를 게 뭐가 있겠습니까? 청년이란 단어에 너무 많은 신경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청년 이전에 사람입니다. 사람으로 존중하고, 사람으로 대접하는 게 먼저입니다.
청년과 함께 떠나는 여행입니다. 일이 어떻게 여행이 되냐고 묻을 수도 있겠습니다. 배낭을 메고 떠나는 것만 여행이 아닙니다. 일상을 벗어난 모든 일이 여행이 됩니다. 그동안 함께 하지 못했던 청년은 그래서 우리에게 새로운 여행입니다. 끝까지 어색한 여행이 되느냐 설레는 여행이 되느냐의 차이만 있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인터넷을 끄적이다 계획서만 한 줄 늘리면 어색함으로 시작해서 답답함으로 마무리하게 됩니다. ‘어떻게 어색하지 않을까?’에서 ‘어떻게 설렐까?’로 생각부터 전환해야 합니다. 걱정을 걷어내고 정보를 채워야 합니다. 직접 찾아가서 물어야 합니다. 의미보다 재미를 먼저 생각하고 장소의 중요성을 알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청년이라는 특수한 집단이 아닌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미루고만 싶던 여행이 기다려지게 됩니다. 그렇게 마음이 먼저 가야 청년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지역사회 청년이 우리들의 새로운 여행 동반자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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