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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보장의 원리 By 양재진
- 2021-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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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보장의 원리 #1.] 보편주의로 가는 두 갈래 길에서
한국의 복지지출이 빠르게 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지수요를 모두 충족하고 있지는 못하다. 늘 부족하다. 따라서 국가는 한정된 재원을 가지고 누구에게 얼마만큼 지급해야 할지를 늘 고민한다. 최근 코로나 사태 이후 지급된 1, 2, 3, 4차 재난지원금의 대상자와 금액 결정 과정에서도 정부의 고민을 읽을 수 있다. 넓게 주자니 액수가 얼마 안된다. 재난 정도가 심한 사람에게만 주자 해도, 과연 어디까지 잘라서 줘야 하는지 고민이 크다.
복지급여 할당의 원리에는 크게 보편주의(universalism)와 선별주의(selectivsim)가 있다. 오늘은 보편주의의 원리에 대해 알아보고,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보편주의는 무엇이어야 하는지 한번 생각해 보기로 하자.
보편주의는 2010년 무상급식 논쟁하면서 꽤 친숙한 개념이 되었다. 모든 사람에게 주는 어떤 것으로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보편주의적 무상급식이 모든 사람에게 급식을 주는 것은 아니다.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대상이다. 보편주의적 아동수당도 마찬가지다. 모든 집에 주는 게 아니라, 아이가 있는 경우에 지급된다. 건강보험도 누구나 혜택을 본다. 보편주의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아무나 혜택을 보는 것은 아니고, 아픈 사람이 혜택을 본다.
따라서 학문적으로 보편주의는 다음과 같이 정의될 수 있다. 실업이나 출산.육아 등으로 소득활동을 못 하고 질병 치료 등으로 특정한 욕구(needs)를 지니게 된 사람들의 경제적 능력 유무를 따지지 않고 급여를 제공하는 경우를 일컫는다. 보편주의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이해되는 선별주의의 경우, 복지를 받아야 할 욕구가 있는지부터 판단하는 것은 보편주의와 동일하다. 그런데 다른 점은 그 사람의 소득이나 자산 수준을 따져서 진짜 도움이 필요한 사람만 가려서 복지혜택을 준다는 데 있다. 한마디로 소득과 재산을 따지지 않고 복지가 필요한 사람 누구에게나 급여를 제공하면 보편주의가 된다. 그런데 이 보편적 복지급여가 어느 정도 만족할만한 수준이 돼야 한다. 일부 저소득자들만 공공복지에 만족하고, 많은 사람이 실제로는 가족이나 시장을 통해 복지수요를 충족하게 된다면, 보편주의적 보장이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렵다.
복지국가 건설과정에서 보편주의는 두 가지 경로로 실현되었다. 독일의 길과 스웨덴의 길로 나눠 볼 수 있다. 독일은 1800년대 후반에 사회보험을 도입하면서 복지국가의 닻을 올렸다. 우리도 그랬지만, 사회보험은 안정된 지위를 가진 핵심 노동자부터 시작된다. 이후 농민, 자영자, 그리고 근로자 가족 등으로 적용 범위가 확대되어 나간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보편주의가 완성되어 갔다.
스웨덴은 사회보험이 아닌 일반조세를 가지고 기초보장을 탄탄히 하는 데서부터 출발했다. 예컨대, 사회보험이 아닌 조세기반의 기초연금을 가지고 근로자뿐만 아니라 농민을 포함한 모든 노인에게 연금을 지급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국민소득이 오르자, 중산층에게 정액 기초연금은 '용돈' 연금에 불과했다. 중산층은 기업연금이나 개인연금같은 사적연금에 의존하고, 소액 기초연금에 의지하는 저소득 노인과 분리되기 시작했다. 1959년에 스웨덴은 사회보험 방식의 소득비례형 연금을 뒤늦게 들여와, 중산층을 공공복지의 틀 안에 붙잡아 두는 데 성공했다. 그렇지 않았으면, 미국과 같이 거대한 사적연금이 중산층 노인의 노후소득보장을 담당하는 잔여주의 복지국가가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찌 되었든 스웨덴은 중산층을 포괄하면서, 즉 독일과 달리 '아래로부터 위로' 보편주의를 완성해 갔다.
한국에서 보편주의는 '위에서부터 아래로'의 확장을 뜻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스웨덴보다는 독일처럼 말이다. 우리의 사회보장제도가 사회보험에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보험이 시작될 때, 이에 가입할 수 있는 사람은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안정된 지위를 가진 근로자였다. 이후 중소기업으로 농민과 자영업자 등으로 적용이 확대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보험료를 납부하지 못하고, 고용이 불안해 사회보험에 가입자격을 못 갖추는 사람이 상당하다. 소위 사각지대에 빠진 사람들의 규모가 최소 30% 정도 되고 있다. 따라서 한국에서 보편주의는 이들 사각지대에 빠진 국민을 사회보장의 틀 안에 포괄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맞다. 그러나 미국의 사례에서 보듯, 중산층도 만족할만한 수준의 현금급여나 서비스의 질이 담보되지 않으면, 중산층은 공공이 아닌 사적 복지에 의존하게 된다. 이러해서는 보편적 복지국가를 이루기 어렵다. 따라서 한국은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풀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사각지대를 없애고 동시에 중산층도 만족할 수 있는 공공복지를 실현해야 한다. 위험이 있는 곳에, 보살펴야 할 욕구가 있는 곳에 적정 수준의 복지가 빈틈없이 제공되어야 한다. 어찌해야 할까? 앞으로 본 칼럼을 통해 하나둘씩 해법을 제시해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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