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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보장의 원리 By 양재진
- 2021-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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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보장의 원리 #2.] 선별주의 다시 보기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표적인 복지논쟁 중에 보편주의(universalism)와 선별주의(selectivism) 논쟁이 있다. 보편주의적 사회보장은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바고, 그 대의에 아무도 토를 달지 않는다. 필자의 생각도 그러하다. 그러나 선별주의를 보편주의와 대립하는 그 어떤 것, 나아가 반복지적인 것으로 여기는 경향에 대해서는 우려가 매우 크다. 선별주의와 보편주의의 조화를 통해 보편적 복지국가가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보자.
선별주의는 사회적 위험에 빠지고 질병, 장애 등으로 특정 욕구(needs)를 갖게 된 사람 중에 일정 기준에 부합하는 자만을 복지의 대상으로 삼는 경우를 뜻한다. ‘제한된 멤버십’(restricted membership)을 의미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조합주의에 기반을 둔 의료보험을 들 수 있다. 예전에 한국의 건강보험은 직장과 지역별로 의료보험조합이 나누어져 있었다. 삼성전자 의료보험조합, 서대문구 의료보험조합 하는 식으로 말이다. 제한된 멤버십 개념 아래에서, 보편주의와 선별주의가 반드시 대립적 관계만은 아니다. 실제로 노태우 정부 때, 조합주의 방식을 통해 전 국민 건강보험을 이루었다. 적용대상은 조합별로 선별하여 나누되, 모든 국민이 건강보험의 혜택을 볼 수 있었다.
선별주의가 보편주의의 이상과 충돌하는 경우는, 국가가 특정 복지 욕구를 지닌 사람 중에 자신을 돌볼 수 없는 취약계층만을 급여의 대상으로 삼을 때이다. 이를 잔여주의(residualism)라 부른다. 잔여주의 복지국가에서 중산층은 시장에서 복지를 구매하고, 국가는 저소득 취약계층만을 복지의 대상으로 삼는다. 빈자에 대한 복지 급여는 높지 않고 국민최저선(National Minimum)에 머문다.
선별주의가 잔여주의와 동일시되는 경우, 선별주의와 보편주의는 서로 화해하기 어렵다. 우리 사회에서 무상급식 논쟁이 ‘보편주의 vs. 선별주의’ 논쟁이 되면서, 한국에서 선별주의는 안타깝게도 보편주의와 대치하는 잔여주의적 개념으로 협소하게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 설명했듯이, 선별주의를 원뜻대로 제한된 멤버십으로 정의 내리게 되면 제도 설계에 따라 얼마든지 보편주의와 화해를 할 수 있다. [선별주의+선별주의=체제 수준의 보편주의]가 성립할 수 있다.
스웨덴의 1999년 연금개혁의 예를 보자.
스웨덴은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지급해왔다. 보편주의 복지의 대명사였다. 그러나 소득수준이 오르고 기초연금만으로는 중산층의 노후소득보장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자, 1959년에 독일처럼 소득비례형 공적 연금제도를 도입했다. 소득비례연금을 받지 못하거나 받아도 액수가 얼마 안 되는 저소득 노인들을 위해서는 기초연금을 인상하는 것으로 대응해왔다. 그러나 기초연금의 인상은 더디었다. 중산층을 포함해 전체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주니, 그 재정 소요가 매우 컸기 때문이다. 모든 노인이 공적 연금을 받지만, 보편주의적인 기초연금에만 의존해야 하는 저소득 노인은 거의 모두 빈곤선 아래로 떨어졌다.
따라서 1999년에 보편주의적 기초연금을 폐지한 후, 선별주의적인 기초보장연금(Guarantee Pension)으로 전환하였다. 소득비례연금액이 기초보장선을 넘는 중산층 노인에게는 기초연금을 주지 않았다. 여기서 아낀 재정을 기초선 이하의 노인에게 쏟아부었다. 저소득 노인이 받을 수 있는 연금액을 최대 2배까지 올렸다. 역설적이지만, 프로그램 수준에서 보편주의 기초연금을 포기함으로써, 체제 수준에서는 급여의 적절성까지 보장되는 보편적 노후소득보장제도가 마련된 것이다. 선별주의의 기초보장연금과 선별적 소득비례연금이 모여 누구도 빈곤선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노후소득보장제도를 만든 것이다.
한국 노인의 빈곤율은 OECD 국가 중에 최고로 높다. 전체 노인의 35%가 빈곤선 이하다. 그런데도 기초연금을 재산과 소득 상위 30%를 제외한 전체의 70% 노인에게 지급한다. 100% 노인은 아니니 보편주의라 할 수는 없지만, 준 보편주의라 칭할 수 있겠다. 그런데 기초연금액은 1인 가구 생계 급여의 절반 정도인 30만 원이다. 저소득 노인들이 모두 기초연금을 받고 있는데도 빈곤선 이하 노인들이 많은 이유다. 프로그램 수준에서 보편주의를 고집하기보다는, 체제 수준에서 실질적인 보편주의를 구현할 수 있게, 필요하다면 과감히 선별주의를 수용하는 실용주의적 태도가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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