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지밖복지 By 노수현
- 2021-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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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보면서 가까이 보기 어렵다. 섬세하면서도 무던하기, 활발하면서도 신중하기처럼 두 가지 속성을 모두 갖추기 힘들다. 지역복지 현장을 방문해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 실천과 연구 두 가지를 모두 잘하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 실천을 잘하는 곳은 결과물을 정리하여 전하는 작업에 약한 면이 있다. 반대로 문서 전달력이 높은 곳은 실천력이 그만치 못 미치는 경우를 본다. 성공사례로 알려진 현장을 방문하면 종종 경험한다. 오늘 소개할 기관은 드물게 실천력과 연구력을 겸비한 곳이다. 마포구 영구임대단지 내에 있는 성산종합사회복지관 지역복지팀이다. 성산복지관에서 주관한 마포구 사회적 고립 예방 프로젝트 ‘골목에서 사람을 만나다. 지난 3년의 이야기’의 내용을 공유하며 현장에서 느꼈던 몇 가지 생각을 덧붙인다.
1. 주민이 주민을 발견
성산복지관은 ‘발견’의 중요성을 강조함으로 발표를 시작했다. 사회적 고립 관련 활동의 핵심은 두 가지 질문으로 요약된다. 하나는 ‘어떻게 발견할 것인가?’이고, 다른 하나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이다. 두 가지 질문에서 하나를 남겨야 한다면 단연 앞의 질문이다. 다른 사업은 발견이 중요한 화두가 아니었다. 이미 발견된 사람이나 찾아온 사람을 대상으로 사업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사회적 고립 관련 사업을 맡게 된 실무자가 가장 곤혹스러운 부분이다. 사업을 시작해야 하는데 사업의 대상이 없다. 찾는 것부터가 시작되는 기존에 경험하지 못한 방식이다. 모집으로 시작하는 다른 사업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또한, 사회적 고립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그동안은 명확한 문제의식과 대상 세분화로 사업을 계획했다. 방과 후 돌봄이 필요한 초등학교 저학년 맞벌이 부부처럼 말이다. 그런데 사회적 고립은 개념부터가 명확하지 않다. 논문과 자료를 찾아봐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개념 정의가 되지 않으니 시간이 갈수록 부담만 더해지고 시작은 자꾸만 미뤄진다.
성산복지관의 답은 ‘실행’이었다. 물론 고민의 과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고민에 그치지 않고 실행하면서 답을 찾았다. 직원들이 고민하고, 고민의 결과물을 지역주민과 나눴다. 주민이 건넨 힌트를 가지고 다시 직원들이 고민했고 고민의 결과물을 다시 주민에게로 가져가는 일을 반복했다. 그런 과정에서 나온 단어가 ‘발견’이다. 보통 사회적 고립 가구 뒤에 나오는 익숙한 단어는 ‘발굴’이다. 사각지대 발굴처럼 말이다. 발견과 발굴이 무슨 큰 차이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언어는 우리의 의식을 지배한다. ‘발견’의 사전적 의미는 미처 찾아내지 못하였거나 아직 알려지지 아니한 사물이나 현상, 사실 따위를 찾아내는 것이다. ‘발굴’은 유적발굴과 신인발굴처럼 뛰어난 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왜 ‘발견’이란 단어가 중요한지 사전적 정의만 봐도 알게 된다. 사회적 고립에 처한 사람은 발견의 대상이지 발굴의 대상은 아니다. 우리는 없는 것을 땅을 파서 찾는 게 아니라 미처 찾아내지 못하였던 것을 찾는 것이다. 또한, 발굴과 발견의 중요한 차이는 주체가 다르다는 점이다. 발굴은 전문가의 영역이고 발견은 주민의 몫이다. 사회적 고립의 시작점을 ‘발견’으로 잡으니 주체가 외부전문가가 아닌 주민이 된다. 성산복지관이 발견을 주민과 함께, 주민 중심으로 시작한 것은 당연한 결과다. 성산복지관은 이것을 ‘당사자 주민조직’이 ‘더 당사자 주민’을 찾는 것으로 기술했다. 발견의 핵심을 요약한 표현이다. 아직도 시작점으로 고민이 된다면, 없는 것을 발굴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발굴하는 것이 아니다. 당사자인 주민이 일상에서 더 당사자인 주민을 발견하는 것이다. 사회적 고립의 첫 번째 질문에 대한 성산복지관의 답이다.
2. 작은 성공의 경험
성산복지관은 주민이 주민을 찾는 것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첫 번째로 홍보지를 만들어 주민이 직접 주민에게 전달했다. 복지관 실무자에게는 특별한 방법은 아니지만 처음 시도하는 주민에게는 부담이다. 실제로 참여한 주민은 기대보다는 걱정과 염려의 마음으로 홍보와 발견에 나섰다. 그런데 주민들의 걱정과 달리 이웃들이 관심을 가졌고 취지를 이해해주었다. 이웃의 응원을 받은 주민들은 더 적극적으로 활동에 임할 수 있었다. 사업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자원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동안 유형의 자원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유형의 자원만큼 중요한 것이 무형의 자원이다. 주민들이 처음 시도하여 얻은 자신감 같은 것 말이다. 작은 성공을 경험한 주민은 이후의 활동에 대한 기대와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사회적 고립을 발견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처음부터 이러한 높은 목표로만 시작한다면 쉽사리 지치고 오히려 실패의 경험만 쌓인다. 원대한 목표도 이렇게 작은 성공의 경험이 쌓여야 닿을 수 있다. 사회적 고립 관련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면 고립을 해소하고 죽음의 문턱에 놓인 이웃을 구한다는 절박한 목표를 잠시 내려놓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시도하자. 그리고 그 일에서 작은 성공의 경험을 쌓자. 주민과 실무자 모두에게 필요한 에너지원이다.
3. 기존의 사업을 활용
성산복지관은 자치구에서 실시하는 사회적 고립가구 전수조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복지 분야와 관련해서 꼭 언급되는 것이 사각지대와 중복수혜이다. 우리나라의 사회복지 분야 정부지출은 OECD 국가 중에서 최하위 수준이다. 아직 중복을 논할 단계가 아니란 말이다. 그런데도 ‘중복’의 문제가 나오는 것은 실질적인 자원의 중복보다는 대상의 중복과 칸막이 행정, 공유되지 않는 정보 때문이다. 특히 정보가 공유되지 않는 문제는 심각하다. 비단 공공과 민간의 정보 공유만이 아니라 민간과 민간의 정보도 충분히 공유되지 않는 실정이다. 그렇다 보니 유사한 사업, 유사한 대상, 유사한 기능이 지역에서 반복적으로 실행된다. 성산복지관은 지역의 정보에 민감했다. 공공의 지역조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정보를 수집하고 공공과 함께할 수 있는 부분을 적극적으로 모색했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피할 수 없는 협력관계를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또한, 성산복지관은 외부 협력만이 아니라 기존의 내부사업도 연계했다. ‘노노케어’ 사업이다. 노노케어의 어르신들은 누구보다 많은 지역사회 정보를 가지고 있다. 성산복지관은 이것을 놓치지 않고, 누구나 알고 있는 정보를 사업의 자산으로 만들었다. 참여 어르신을 활용하여 사회적 고립 발견에 나선 것이다. 사회적 고립은 기존의 방식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과제이다. 관점의 전환과 새로운 방식의 실행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성상복지관의 사례처럼 기존의 사업, 인력, 네트워크에서 시작할 수 있다. 사회적 고립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되, 실행은 기존의 사업부터 적용해 나가는 방식이다.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실행하라는 격언처럼 말이다. 실제로 성산복지관은 ‘노노케어’를 매개로 2018년 10월에서 2019년 사이에 총 3회의 프로그램을 진행하여 188명 방문했고, 49명을 새롭게 연결하였다. 아무리 열정이 넘치는 사회복지사가 가가호호를 방문해도 얻기 어려운 성과이다. 기존의 사업을 활용하여 주민이 주민을 만난 결과이다.
4. 주민의 밭 위에 자원과 프로그램 더하기
밭이 없는데 씨앗과 물을 준비하고 있으면 어리석은 일이다. 밭이 먼저다. 외부자원을 획득하여 사업을 시작하는 방식이 이와 다르지 않다. 사회복지사의 머리에서 사업이 시작되고 프로포절을 통해 외부자원을 획득한다. 계획에 맞춰 그때부터 사람을 모으고 프로그램을 시작한다. 계획된 시간과 자원만큼만 실행하고 평가와 결과 보고로 사업을 마무리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이다. 이 방식에서는 아무리 주민 참여와 주체성을 말해도 한계가 있다. 사회복지사의 문제의식과 필요에서 출발하여 계획수립과 실행의 주체가 실무자가 되기 때문이다. 어떤 좋은 표현을 써도 주민은 프로그램의 참석자가 되고, 심하면 계획 마무리를 위한 수단이 된다. 성산복지관도 외부 공모로 자원을 개발했다. 차이가 있다면 이미 진행되고 있는 사업에서 필요한 자원을 공모의 방식으로 충당했다. 프로포절을 위해 사업을 계획하고 사람을 모을 필요가 없었다. 이미 주민과 함께 진행하고 있는 내용이 계획이 되었다. 홍보와 모집, 새로운 프로그램이 필요 없었다는 말이다. 보조금이 제한적이고 후원문화도 발달하지 않은 우리나라의 여건에서 프로포절을 통한 자원획득은 필요하다. 다만 성산복지관의 사례처럼 순서가 바뀌지는 않아야 하겠다. 프로포절로 자원을 확보한 다음에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실행하고 있는 사업에 프로포절로 자원을 추가하는 것이다.
5. 실무자의 3가지 제안
발표를 마치고 자유발언 시간에 성산복지관의 조지혜 과장이 강조한 3가지를 소개한다. 첫째, 섬세한 전략의 수립이다. 섬세하다는 말은 실질적이고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말인데, 주체가 주민과 현장이 되어야 한다. 복지관의 업무 효율화를 위한 전략이 아니다. 성공적인 사업성과를 얻기 위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조지혜 과장은 주민과 지역사회를 한 번 더 치밀하게 고민하기를 제안했다. 둘째, 주민 모임과 프로그램부터 함부로 시작하지 않는 것이다. 앞서 말한 주민과 지역사회 중심의 치밀한 전략 없이 우선 주민을 모으고, 프로그램을 돌려 보는 것에 깊은 우려를 표했다. 사업의 주체를 대상으로 만들기 때문이고, 어쩌면 사업의 주체를 잃어버리는 위험한 시도가 될지도 모른다. 셋째, 동 주민센터와의 관계 정립이다. 사회적 고립 관련 사업은 동 주민센터와 접점이 발생한다. 사회적 고립은 사회적 이슈로 공공에서도 관심을 가지는 과제이다. 동일한 과제로 고민하기 때문에 협력하면 좋겠지만, 실제로는 협력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협력을 압도할 전문성은 기본이고, 주고받는 협력의 경험이 충분히 쌓여야 한다. 잘못하면 협력이 아닌 공공의 대행자 역할에 그친다.
성산복지관의 사회적 고립 공유회를 마치면서 ‘태도와 실력’이라는 역량의 두 가지 요소를 다시금 생각한다. 사람을 아끼지 않는 의료는 단순 기술에 지나지 않는다. 심지어 위험한 기술이 되기도 한다. 기술은 반드시 바른 태도의 밭에서 실행되어야 좋은 열매를 맺는다. 사회적 고립도 마찬가지다. 자원과 방법에 앞서서 주민과 지역사회 중심의 바른 태도를 먼저 점검해야 한다. 좋은 밭 위에 잘 심고 가꾸는 실력이 더해져야 한다. 주민을 만나고, 주민의 의견을 끌어내고, 주민이 말하게 하고, 주민이 움직이게 하고, 주민이 주민을 찾게 하는 기술과 경험이 필요하다. 성산복지관의 2019년 공유회에서 사업에 참가한 주민의 발표가 있었다. 주민은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라는 문구로 참여 소감을 말하며 발표를 이어갔다. '주민 000 님'이라는 자막이 없었다면, 사업 실무자의 발표로 알았을 정도로 참여 소감 정도만을 말하는 기존의 주민발표와는 차원이 달랐다. 주민 중심의 바른 태도 위에 주민이 중심이 되는 기술이 더해진 결과다. 주민의 말대로 사회적 고립의 실무자인 나는,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말을 어느 정도 절감하고 있는지 점검해보자. 사회적 고립 성과지표보다 더욱 중요한 점검 사항이다. 확실하게 대답하기 어렵다면, 지금도 늦지 않았다. 조지혜 과장의 조언대로 함부로 주민을 모아서 교육하고, 프로그램을 돌리기 전에 지역에 나가서 주민을 만나자. 그리고 주민과 지역사회에 대해 생각하자. 만나고 생각하고, 다시 생각하고 만나고, 주민과 지역 중심의 치밀한 전략이 세워질 때까지 되풀이해서 말이다. 그런 과정에서 우리도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참여주민의 고백이 우리의 좌표가 될 것이다. 사회적 고립 대응의 흔들리지 않는 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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