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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민간 의료보험은 있는데, 민간 실업보험은 없나?

  • 사회보장
  • 양재진

 민간 의료보험은 있는데, 민간 실업보험은 없나?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해고는 살인이다.’ 노조 집회에서 많이 보게 되는 표어다. 과장된 얘기긴 하지만, 월급쟁이들은 누구나 공감하는 얘기일 것이다. 자동차 사고가 걱정되면 자동차보험에 들고, 암 걸릴까 봐 걱정되면 암 보험을 구매한다. 화재보험, 상해보험 등 온갖 종류의 위험에 대해 보험상품이 개발되어 판매되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실업을 그렇게도 두려워하는 데도 보험시장에 실업보험 상품은 없다. 사고 싶어도 못 산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고용보험이 있어서 그러한가? 그렇지는 않다. 국민건강보험이 있어도 수많은 민간의료보험상품이 판매되고,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이 있어도 온갖 개인연금 상품이 널려 있다. 실업의 위험에 대비하고자 하는 잠재수요가 어마어마한데도, 보험상품이 출시가 안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실업은 개별적 위험(indivisual risk)이지만 동시에 구조적 위험(systemic risk)이기 때문이다. 보험시장이 성립하려면 위험발생확률이 상호 독립적이어야 한다. 누군가가 위험에 처했을 때, 다른 사람들은 위험에 처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보험회사는 위험에 처하지 않은 사람이 납부한 보험료를 위험에 처한 사람에게 보상금으로 이전하면서 이득을 남긴다. 그런데, IMF 경제위기나 코로나 경제위기 때처럼 실업은 종종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만약 어느 해 갑자기 자동차 사고가 쓰나미처럼 발생한다면 자동차 보험회사는 지급불능 상태에 오고 엄청난 적자에 허덕이게 될 것이다. 도산할 수도 있다. 실업은 자동차 사고와 달리 쓰나미처럼 몰려올 수 있기에 보험회사는 감히 실업보험 상품을 팔지 못한다.

또 보험가입자가 위험 발생에 그리고 보상규모에 영향을 줄 수 있으면 안된다. 그런데 실업은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고(자발적 퇴사) 실업기간도 맘대로 조정할 있다. 자발적 실업의 경우에는 안 주면 될 것이다. 문제는 실업의 지속이다. 해고를 당해서 실업보상금을 지급하였다 해도 보험회사는 실업의 지속여부가 외생적 문제 때문인지 스스로 결정한 것인지 판별하기 어렵다. 따라서 사람들은 재취업의 기회가 있어도 실업상태를 길게 유지해서 실업보상금을 오래 많이 받으려 할 것이다. 보험사가 구조적 손실을 입을 수 밖에 없다.

결국 실업보험은 도산의 위험을 무릅쓴 늘 손해 나는 장사가 된다. 민간에서 실업보험이 성립하지 않는 이유다. 따라서 실업보험은 국가가 나설 수 밖에 없다. 이번 코로나 경제위기에 고용보험은 적자로 전환되고 그동안 쌓아 두었던 기금이 다 고갈되었다. 민간이면 망했어야 할 텐데, 고용보험은 정부로부터 돈을 빌리고 지원도 받아가며 버텨가고 있다. 또 고용보험공단은 실업급여 수급자가 실업기간을 연장시키지 않도록, 끊임없이 구직활동을 체크하고 취업을 알선한다. 국가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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