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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복제시대의 사례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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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복제시대의 사례관리

영화 토이스토리2’ 버즈(Buzz)의 자기 정체성 찾기

 

별자리가 지구로부터 저마다의 스토리텔링을 부여받듯,

사례관리실천이 개별화된 개인의 스토리텔링을

각자의 몽타주로 그려나갈 수 있게 돕는 그런 과정이기를.

 

 



사정 양식(assessment tool)’이 가진 동일성의 원리

 

사례관리는 사업이 아닌 실천의 방식입니다. 그러나 복지 현장에서는 사례관리가 사업의 방식(사례관리 사업)으로 구조화되고 실적과 실천방식이 정형화되곤 합니다. 복지기관의 복지사업은 이미 갖고 있는 자원, 프로그램, 예산 등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서비스와 프로그램이 자원과 재원의 효율적 배분과 관리의 측면에서 작동하고 있는 만큼, 이를 매개적으로 활용하는 사례관리 또한 이와 무관할 수 없습니다. 사례관리자의 열정과 실천력과는 별개로, 사례관리의 사업화·구조화 방식에 대한 얘기입니다. 또한 모든 사례관리가 그러하다고 단정 짓는 것은 아닙니다. 전반적인 경향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 사례관리 실천가들은 일상을 매개(또는 구실’)로 가족간의 관계력을 높임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같이 특정한 문제에 대해 밀도있게 개입하고 긍정적인 성과를 만드는 경우를 언급합니다. 그러나 이는 한정된 부분이고 전체는 아닙니다. 이러한 변화를 만들기 위해, 현재 구조에서는 사례관리자의 부단한 노력과 시간의 투입이 필요합니다. 사례관리자는, 사례관리의 원래 목적과 방향에 부합하기 어려운 기 서비스와 프로그램을 제공, 관리하면서 본질적 사례관리 실천을 위한 별도의 노력을 해야 합니다.

 

과거와 비교했을 때 사례관리자의 사례관리 적정 수’ ‘강점관점’ ‘해결중심접근등 질적 전환을 위한 업무량 조절, 실천 방법과 기술 등 전문성을 확보하고 실질적 변화를 위한 제도 개선 등이 이뤄진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본질적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사정 양식(assessment tool)’이 가진 동일성의 원리에 대한 것입니다.

 

동일성의 원리에 대해 비판이론의 대표자인 테오도어 아도르노(1903~ 1969)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인간은 자연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자연을 지배하는 길로 들어선다... 인간은 대자연의 지배로부터 권력을 빼앗아내는 데 성공했지만, 그 성공이 귀결하는 바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와 억압이라는 또 다른 야만의 시작에 불과하다.그 결과 인간의 이성은 주체적으로 사고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 사회 지배를 위한 도구로 전락하게 되었는데, 이를 '도구적 이성(instrumental reason)'이라 정의합니다. 아도르노는 도구적 이성의 기저에 깔려 있는 정신적 원리, 이것을 동일성 원리(the princilpe of identity)’라 하였습니다. 동일성 원리란 주체가 대상을 파악하고 관리하기 위해 서로 다른 대상들을 주체가 가지고 있는 동일한 하나의 형식으로 강제하는 지배 원리입니다.

 

동일성의 원리는 최대 효율을 위해 동일성을 추구하는 도구적 이성에 의해, 스스로 반성하고 비판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해버린, 효율적 목적달성에만 몰두하는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입니다. 동일성의 사고는 상품의 교환을 위한 전제입니다. 현실적으로 상이한 다양한 사물의 다양성을 무시하고(개별화 시키지 않고), 교환을 통해 동일하지 않은 개별존재나 동일하지 않은 것들을 측정 가능한 것으로 만들며, 그러므로 마침내 동일한 것으로 만듭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방식의 교환 원리의 확산은 모든 세계를 동일한 것에, 말하자면 전체성에 관계를 맺으며 행동하게 만듭니다.

 

 

사례관리 양식(sheet)의 복제(원본의 복제, 복제의 복제)

 

전국에 복지관이 400개 정도 있습니다. 만약 400여개 복지관의 사례관리 사정양식을 비교해 본다면 어떨까요? 차이가 있는 경우도 있겠지만 아마도 대부분 비슷한 내용과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례관리가 도입된 이후 심리사회적 사정에 의거한 방식으로 사례관리 양식이 최초 도입되었고, 현장에서 많은 고민 없이 이러한 양식들이 복제의 방식(매뉴얼)으로 확산 되었습니다. 만약 전체를 분석하는 연구가 진행된다면 전반적 사정 양식의 유사성과 경향성이 명확하게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이런 종류의 연구는 진행되기 어려울 듯 합니다. 파장이 만만치 않겠지요. 하지만 누군가 진행해본다면 우리의 성장과 발전에 도움이 되는 자료가 되지 않을까요?)

 

원본은 최초 사례관리를 도입한 기관의 사정 양식 일테고, 복제는 그것을 복제한 것입니다. 복제의 복제는 사정 양식을 복제한 기관의 양식을 다시 복제한 기관의 양식입니다. 중요한 것은 원본과 복제의 의미에 차이가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또한 복제의 복제 과정에서 의미의 차이가 사라집니다. 사례관리 양식이 복제와 복제의 복제 과정을 거치면서 획일화, 일원화되는 과정입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지역적 요소가 반영되지 않은 사정 양식은 생활세계를 획일화된 양식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짐 아이프(Jim Ife)지역사회개발에서 언급한 지역사회의 존중 요소(지역의 지식·기술· ·자본·문화·절차)는 제외된 채 전문가의 접근방식으로만 남게 됩니다. 복제가 원본을 압도(아우라의 사라짐)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지요. 복제의 복제는 이러한 결과물이 획일화된 동일성을 갖게 됨을 의미합니다.

 

사정의 양식이 비슷한 것은 서비스 제공의 방식, 프로그램과 연동된 사례관리의 실천방식 또한 복제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도적 측면에서 잔여적 방식이 우리의 실천방식을 강제하기도 하나 이와 더불어 이것을 강화하거나 고정시키는, 그것을 평가받게 하는 기제로서 현재의 복제된 사례관리 양식이 작동하는 것은 아닐까요?

 

 

서비스, 프로그램의 복제

 

서비스와 프로그램의 유사성, 동일성 또한 실천 현장이 갖고 있는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서울의 한 복지관의 밑반찬 서비스의 방식과 전라도에 있는 한 복지관의 밑반찬 제공방식이 같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역이 다르고 사람이 다르고 삶의 방식이 다릅니다. 자원의 구성방식 또는 자원의 속성이 다릅니다. 삶을 구성하는 문화적 근간이 다른데 제공되는 서비스의 내용과 형식이 같습니다. 이러한 동일성의 원리가 작동되는 근간에는 물론 서비스 전달체계를 구성하는 제도적 방식의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과보다 산출을 중시하고 사업의 형식을 규정해서 제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편 성찰해야 할 것은 이러한 구조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지역중심 실천을 하는 기관이 분명 존재합니다. 제도적으로 잔여적 전달체계의 부품으로 구성되어 있고 서비스와 프로그램이 이에 근간하여 진행되지만 형식을 탈피하여 지역과 사람을 근간으로 내용을 재구성하여 사업을 진행하는 복지관들도 다수입니다.

 

 

기술복제시대의 사례관리

 

현 사례관리는 기관의 기 서비스와 프로그램을 효율적으로 배분 관리하는 방식으로 작동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례관리자의 노력과 열정에 의해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보편적 실천방식으로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한두 사례라도 제대로 해야 한다.’라고 얘기한다면 동의 되는 지점도 있지만, 좋은 사례가 있으니 모두 이렇게 실천해야 한다라고 논리를 펼치는 것 또한 어렵습니다.


발터 벤야민(1892~1940)은 독일 출신의 유태계 언어철학자, 비평가입니다. 발터 벤야민은 아도르노에 비해 기술복제시대를 긍정하였습니다. 벤야민은 대량생산의 산물이 대중을 기만하고 불구로 만든다고 비판한 아도르노와는 달리, 20세기의 기술 복제 시대는 일반 대중을 각성시킬 것으로 예견하였습니다. 기술복제시대의 몽타주라는 형식 원리는 대중의 충격과 각성을 불러일으킴으로써 대중을 집단적 주체로 형성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몽타주는 프랑스어로 부분을 조립하여 완성품을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발터 벤야민은 아케이드 프로젝트라는 미완성된 책에서 이전의 학자들은 전혀 거들떠보지 않은 역사의 폐품들, , 개념이 아닌 사물을 사유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건물·상품·기술에서부터 도박·비행기·일기예보·도로표지판·먼지 등 일상의 자질구레한 소품이 진지한 사유의 대상으로 관심의 주인공이 된 것입니다.

 

벤야민은 이러한 대상을 별자리를 그려내듯 이러한 대상들을 나란히 늘어놓아 그 이미지가 말하게 하는 방식을 썼습니다. 마치 아케이드에 밀집된 개별상점들이 어떤 총체적 이미지를 구성해내듯, 그가 끌어들인 소재들을 병렬해 몽타주 효과를 내었습니다. 일관된 주제를 지양하고, 개념화 시키지 않고 이미지를 그대로 보여주어 독자가 이미지들 사이에 선을 그음으로 나름의 별자리를 만들어 내는 방식을 창출하였습니다.

 

정리하면, 아도르노에게 기술복제시대의 대중문화는 도구적 이성의 결과로 일종의 프로파간다(propaganda) 수단이었지만, 벤야민은 대중문화를 복제를 통해 대상과의 거리를 좁히고 이를 통해 대중이 새롭게 깨어나는 계기를 만드는 수단으로 보았습니다. 여러분들은 두 석학 중 누가 현실을 바르게 바라보았다고 생각하시나요?

 

 

버즈(Buzz)의 자기 정체성 찾기

 

신혜경의 책 벤야민 & 아도르노 : 대중문화의 기만 혹은 해방(2009)에서는 토이스토리2의 주인공인 버즈(Buzz)를 통해 아도르노와 벤야민의 관점의 차이를 다룹니다. 버즈(Buzz)는 자신을 유일한 우주 전사로 생각하지만, 마트에 진열된 수많은 '버즈'를 보면서 좌절합니다. 그 순간에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다가 나중에는 다른 버즈를 도와주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다는 이야기에서 대중문화에 대한 아도르노와 벤야민의 상반된 관점을 짚어냅니다. 외양이 같은 수많은 버즈에 집중하는가, 아니면 각성하는 버즈에 집중하는가.’

 


<이미지 출처 : 픽사 홈페이지>


오늘날 기술복제시대는 이러한 양면이 모두 존재합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사례관리 실천에 대해 우리는 어떤 관점을 취해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한 선택은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 상황입니다. 보다 현명한 과제해결을 위해 보다 깊이 있는 실천에 대한 숙고가 필요합니다. 기술복제시대의 사례관리가 수많은 버즈들이 많았다면, ‘각성하는 버즈도 좀 더 많아져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례관리실천의 주요한 매개가 기관의 서비스와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매개물의 성격이 바뀌는 건 사례관리 실천에도 매우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개별화에 근간한 실천의 선택지가 좀 더 많아질수록 현장의 다양성은 풍성해지지 않을까요? 여러분들은 어떤 버즈가 되고 싶으신가요.

 

 

지역사회 존중요소와 사례관리 사정 양식(assessment tool)

 

사례관리의 다른 작동을 위해서는 지역사회가 본래 갖고 있던 지식과 기술, 절차, 문화, 자원을 존중하고 거기서부터 사정 양식을 구조화해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전문가의 지식과 지역의 존중 요소가 결합된 그 지역사회만의 사례관리 사정 양식을 상상해 봅니다. 이미지를 나열하여 별자리를 각자가 그려내듯, 탈근대 시대의 사례관리 사정 양식은 지역의 절차와 문화, 자본, 지식이 포함된 지역사회의 기술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또한 사정 양식과 연관해 실천의 방식에 있어서도 공급자 주도로 이뤄졌던 기관의 단위 사업, 프로그램, 서비스의 내용과 형식을 가능한 수준부터 지역사회 중심으로, 통합의 방식으로, 당사자성을 강조하고 주요한 근간으로 세우는 것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역사회 중심실천은 지역사회가 갖고 있는 지식과 기술, 절차, 문화, 자원을 존중하고 그것에서부터 일하는 것입니다. 통합은 프로그램의 기획, 실행, 평가의 과정에 당사자와 지역사회 체계를 참여시키는 것입니다. 기관이 도모하는 일의 이니셔티브를 기관이 갖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와 지역사회에 두는 것입니다. 당사자성을 강조하는 것은 당사자의 자기결정을 존중하고 보충성의 원리에 입각해 일하는 것입니다. 보충성의 원리는 전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가 주도하고 필요한 시기와 상황에 맞춰,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것처럼 지원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서비스와 프로그램이 이러한 방식으로 변화된다면 사례관리는 자연스럽게 직접적 간접적 실천이 기관 중심이 아닌 당사자를 향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마치 각자가 그린, 별자리라는 이름을 공유하는 수많은 별자리가 그려지는 것처럼요. 큰 사업부터 바꾸기 어렵다면 작은 단위의 사업부터 적용해 보는 건 어떨까요? 작은 성과를 공유하고 경험이 축척된다면 보다 큰 변화를 바라고 지향할 수 있습니다.

 

발터 벤야민은 인식은 일종의 소유라 표현하였습니다. 어떤 시간을 겪어 왔으며 어떤 지평으로서 세상을 마주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세상의 범주도 달라집니다. 별자리가 지구로부터 저마다의 스토리텔링을 부여받듯, 사례관리실천이 개별화된 개인의 스토리텔링을 각자의 몽타주로 그려나갈 수 있게 돕는 그런 과정이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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