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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한 사례관리, 함박복지관 노현래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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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한 사례관리


변화의 속도가 빨라도 너무 빠르다. 빠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유연해야 한다. 유연한 연대, 유연한 사업계획서, 유연한 조직 앞에 ‘유연함’이 붙는 이유다. 똑같은 방식으로 사회복지 실천에 유연함을 넣으면 지역사회 변화 대응에 실마리를 얻는다. 천지창조와 같이 무에서 유를 만드는 변화가 아니다. 지금의 실천에 유연함을 더하는 변화다.


함박복지관 노현래 팀장은 출근길에 복지관 입구 근처에서 잔뜩 화가 난 주민을 만났다. 언뜻 들어봐도 복지관을 욕하는 소리였다. 아침부터 민원인을 상대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지나치려다 발길이 멈췄고 주민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주민은 “산책 다니는 길에 복지관이 새로 생긴 것도 화가 나는 데 안내판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어디로 갈지 모르게 만들었고 산으로 오르는 길을 못 찾아 복지관 건물을 몇 바퀴 돌았다’고 하셨다.


듣고 보니 이해가 되었다. 그럴만하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마음을 전하고 찾으시는 입구까지 안내해 드렸다. 내친김에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시는 집까지 같이 가게 되었다. 다시 복지관으로 가려는데 들어와서 차 한잔하고 가라고 권하셨다. 출근도 전에 고민이 되었지만 거절하기도 어색해서 집으로 들어갔다.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액자에 걸린 가족사진을 보면서 아드님 이야기를 하셨고, 동네 이야기와 소소한 별것 없는 대화가 이어졌다.


사례관리는 복지 현장의 전문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기술이다. 어쩌면 그동안 우리의 전문성을 증명하는 마지막 보루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더 배우고 더 개선할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높은 수준에 올랐다. 어떤 의미에서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전문화되었다. 세분화된 절차와 기술, 기록 문서는 너무도 잘 갖춰졌다. 사례관리자의 태도와 자원의 부족이 문제라면 문제이지 과정이 부족하지는 않다.


사례관리에 필요한 것은 전문화보다는 유연함이다. 함박복지관 노현래 팀장이 좋은 예이다. 노현래 팀장은 지역복지팀이다. 사례관리를 담당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노현래 팀장은 이날 유연한 사례관리의 모형을 보여줬다. 노현래 팀장의 유연한 사례관리를 살펴보자.


첫째, 자연스러운 만남으로 시작되었다. 사회복지는 대면 서비스이다. 코로나 19로 비대면 상황이 많아졌지만, 임시방편이고 복지서비스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야 시작된다. 실무자와 주민이, 주민과 주민이 만나야 사회복지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만남이 자연스럽지 못했다. 프로그램과 행사, 상담으로 만났다. 만남의 방식이 제한되었다. 주로 만나는 곳은 복지관으로 만남의 장소가 한정되었다. 물론 노현래 팀장의 만남은 너무 자연스러워서 첫 만남에 욕까지 먹었지만 말이다. 관계는 우연에서 시작된다. 영업과 종교를 알리기 위한 치밀한 계획적 만남을 빼면 말이다.


첫 단추가 중요하다. 시작이 자연스럽지 못했기 때문에 다음이 편하기 어렵다. 우리가 아무리 편하게 대해도 복지관은 우리에게 익숙한 공간이다. 공간은 익숙한 사람이 주인이다. 프로그램 참석자가 프로그램 진행자보다 편할 리 없다. 마을지향복지관 사업으로 주민만나기가 익숙한 기관이 있다. 유연한 사례관리에 유리한 기관이다. 반면 아직도 주민을 만나기가 어색하다면 유연한 사례관리가 어렵다. 그 때문에 과거의 문제를 분석하고 자원을 연결하고 관리하는 것에는 능숙하지만 변화에 실시간으로 대응하는 현재형 사례관리, 당사자와 함께 실행하는 참여형 사례관리는 어렵다.


둘째, 살아있는 생생한 정보를 얻었다. 나는 노수현이다. 48세에 일산에 거주하고 결혼하여 1남 1녀의 자녀가 있다. 아파트에 거주하며 연봉은…밝힐뻔했다. 이런 정보로 노수현을 설명하지 못한다. 더욱 중요한 정보는 지금 노수현이 무엇을 원하고, 어떤 것에 관심을 두며 가장 어려움을 겪는 마음의 짐이 무엇인지이다. 앞의 정보는 누구에게나 어렵지 않게 말한다. 그러나 뒤의 정보는 가까운 사람, 마음이 통하는 사람, 내 사람과만 나눈다.

사례관리를 집으로 비유하면 지붕을 받치는 두 기둥이 있다. 정보기둥과 자원기둥이다. 욕구, 필요, 문제를 담은 정보 탐색을 위해 대화, 상담, 사정을 한다. 정보를 찾았다면 자원을 투입하여 실행한다. 정보와 자원의 두 기둥은 균형이 중요하다. 정보 기둥은 엄청나게 높은 데 자원기둥이 낮으면 집이 무너진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시작은 정보기둥이다. 정확한 정보에서 단단한 자원기둥 설계가 가능하다. 정보 기둥이 허술하면 자원 기둥도 허술해진다.

그동안 우리가 얻은 정보의 질을 생각해 본다. 정보의 양은 많았지만, 정보의 질은 부족하지 않았나? 문서에 기록하는 정보는 많이 얻었지만 살아있는 생생한 정보는 부족하지 않았나? 노수현의 생생한 정보를 알려주는 가장 좋은 공간이 있다. 내가 사는 집이다.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이 나를 말해준다. 인테리어가 내 성격을 말해준다. 노현래 팀장은 그날 사례관리를 하지 않았다. 상담도 안 했고 다이어리를 펼치고 기록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주민의 방에 들어서면서 많은 정보를 온몸으로 입수했다. 가족앨범, 냉장고 속 음료수, 신발정리, 아들 이야기, 시시콜콜한 사는 이야기에서 생생한 정보를 얻었다. 자연스러운 만남의 기초 위에 단단한 정보 기둥을 세웠다.


셋째, 반가운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교육 후에 만족도 조사로 교육 평가를 한다. 계량적으로 교육의 효과를 평가하는 방법이다. 교육 평가를 하지 않아도 교육의 효과를 정확하게 아는 방법이 있다. 다음 교육의 참석률이다. 또 왔다는 것은 좋았다는 말이다. 사회복지의 모든 실천 방법은 관계의 밭 위에 심어야 한다. 프로그램과 행사도 관계가 전제되어야 한다. 주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된다. 관계로 이어져야 한다. 구호와 사회복지의 차이다. 사례관리도 예외는 아니다. 관계로 이어지는 사례관리가 되어야 한다.


다음 상담일자를 잡는 것은 관계를 지속하는 소극적이고 공급자 중심의 방법이다. 당사자 입장에서 또 만나고 싶어야 관계가 맺어지고 이어진다. 당사자가 원하는 관계에 시간을 더하면 깊은 관계, 우리가 문서에 그렇게도 추상적으로 쓰는 긴밀한 관계 구축, 지역공동체 기반이 만들어진다. 노현래 팀장은 주민과 다음 약속을 잡지 않았다. 그런데도 다시 만날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주민이 먼저 다음 만남을 기약했기 때문이다. 다음 만남도 이번처럼 우연히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분명한 사실은 언제 다시 만나든지 반가울 것이다. 주민이 먼저 다음을 기약하는 프로그램, 행사, 상담, 모임이 최고의 복지실천이다.


지역밀착형 복지관 사업으로 조직을 개편한 기관이 있다. 지역조직, 서비스제공, 사례관리 기능으로 조직된 팀을 동으로 재편했다. 모든 개편에는 시행착오와 불편함이 따른다. 특히 사례관리를 오랫동안 실천한 실무자의 어색함이 종종 들린다. 지역밀착형 사례관리가 따로 있지는 않다. 다만 지역밀착형 복지관 사업이 지역의 변화에 더욱 민감하게 대응하고 주민에게 가까이 가자는 취지를 떠올려서 ‘유연함'이 더해지면 좋겠다. 물론 위의 예시가 무슨 사례관리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맞다. 엄격한 의미에서 사례관리는 아니다. 사례관리의 새로운 절차를 제시하는 게 아니라 지금의 절차에 유연함을 더하는 사례이다. 또한 지역조직이 사례관리가 되고, 사례관리가 지역조직이 되어 기능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드는 사례이다.


변화는 희미한 경계에서 시작된다. 세포막의 얇은 경계에서 생명이 나오고 수평선의 희미한 경계에서 하루가 시작된다. 중요한 것은 사례관리, 서비스제공, 지역조직이 아니라 그 경계를 희미하게 만드는 사람중심의 실천이다. 인사를 나누고 주민의 집에서 대화를 나누니 사례관리가 되고, 주민에게 동네 이야기를 듣고 다음을 기약하니 지역조직이 된 것처럼 말이다. 사례관리를 위해 대화를 나누고 지역조직을 위해 동네 이야기를 듣는 것과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다. 힘주어 강조하자면 아주 많이 다르다. 노현래 팀장이 업무 전에 주민의 집에서 나눈 대화가 사례관리, 서비스제공, 지역조직의 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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