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지에 ‘사람중심’을 탐(探)하다 By 정병오
- 2022-09-30
- 3807
- 0
- 0
현장에서 '임파워먼트'는 다 어디로 갔나요?
복지 실천에서 근본적이고 본질적이라 할 수 있는 관점의 변화로서 ‘임파워먼트’의 의미와 관점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4차 산업혁명, 코로나 19 팬데믹 등 엄청난 환경 변화 속에서 복지 실천이 방향을 잃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환경 변화로 인한 패러다임의 변화 속에서도 잃지 말아야 할 가치는 결국 ‘사람 중심’이다. 오늘 이야기하게 될 ‘임파워먼트’는 ‘사람 중심’의 본질을 복지 실천의 관점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표현한 개념이다. 복지 실천에서 기술, 방법, 지침에 집중하다 보면, 임파워먼트와 같은 당사자 중심의 가치, 사람 중심의 가치가 훼손되거나 희미해가는 복지 현장을 많이 목격하게 된다. 복지 현장의 혁신은 새로운 방법이나 기술을 발굴해내고 다듬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임파워먼트와 같은 잃어버린 가치나 관점을 회복하고 가다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용자나 주민이 사회복지사나 기관에 의존하게 만드는 실천이 아니고, 당사자가 자신이 가진 삶의 문제를 자신의 능력이나 주변 환경에 존재하는 자원을 찾아내 스스로 해결해나가도록 도우면서 동행하거나 촉진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 때로는 당사자의 주변 환경에 장애물이 존재할 때, 그것이 사람, 기관, 제도라면 그것을 상대로 함께 싸우거나 투쟁하면서 옹호하거나 대변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이것이 결국 복지 현장의 임파워먼트 관점이고 실천이다. 현장에서 많이 희미해지고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서 많이 안타깝기도 하다.
사회복지사가 만나는 사람들은 삶의 여러 문제로 인해 낙담하거나 지쳐있는 경우가 많고, 부정적인 미래를 전망하거나 삶의 의지가 꺾여 있는 경우가 많다. 이들이 삶에 대한 통제력을 갖고 긍정적인 미래를 꿈꾸며 힘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 실천이 필요한데, 이것이 임파워먼트 실천이다.
임파워먼트의 의미
사회복지사는 어떤 다른 직업 군보다 ‘임파워먼트’라는 말을 많이 듣고 산다. 임파워먼트 실천이라는 표현, 임파워먼트 관점이라는 표현 등 다양하게 사용해왔다. 단순히 복지 실천에서만 사용하는 단어는 아니다. 경영 측면에서도 직원의 성장과 위임과 관련해 임파워먼트를 사용한다. 리더의 임파워먼트, 중간관리자의 임파워먼트, 직원의 임파워먼트 등 다양한 계층의 조직 구성원의 ‘역량 강화’나 ‘권한 위임’을 임파워먼트라는 용어를 활용해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임파워먼트(empowerment)는 그 단어 안에 핵심 개념이 숨겨져 있다. ‘power’의 개념은 다양하게 정의되고 있어서 하나로 규정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보통 힘이나 권력이라고 정의되는 경우가 많지만, 역량, 권한, 권능, 능력 등 더 다양한 의미로 정의된다. 여기에 ‘~을 되게 하다’라는 의미의 접두사인 ‘em’을 붙여 완성되는 단어다. 이 두 가지 단어의 의미로만 보면 ‘힘을 갖게 하다’로 해석할 수 있다. ‘권력이나 권한을 갖게 하다 또는 부여하다’는 의미가 된다. 그리고 ‘역량, 능력, 권능을 갖추게 하다’는 의미도 될 수도 있다.
복지 실천에서 임파워먼트는 복지 프로그램이나 서비스 이용자인 주민이나 당사자가 스스로 삶의 문제에 대해 성찰하여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결핍된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자신의 힘을 키워 주체적으로 해결해나가는 것을 말한다. 당사자가 사회복지기관이나 사회복지사에 의존해서 자신의 문제 해결이나 결핍된 욕구 충족을 수동적으로 해나가는 것이 아니다. 사회복지사나 기관은 그러한 당사자의 노력을 지지하고 격려하면서 뒷받침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사회복지사는 당사자가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자원이나 강점을 스스로 발견해 활용할 수 있도록 동행하거나 촉진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장벽이나 걸림돌이 되는 사람, 기관, 제도가 있다면 사회복지사는 적극적으로 당사자의 어려움을 옹호하거나 대변하는 역할이나 제도 개선 등의 연대 활동을 해야 할 수도 있다.
임파워먼트의 3가지 차원
복지 실천에서 임파워먼트는 이용자나 주민이 당사자로서 스스로 힘을 갖는다는 미시적 차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그리고 사회 구조적 차원과 같은 거시적 차원에서도 검토될 수가 있다.
1) 개인 차원
개인적 차원의 임파워먼트라는 것은 이용자나 주민 당사자가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력을 갖도록 사회복지사가 지원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도 자신의 삶을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역량을 키워나가는 것이다. 자신의 재능이나 강점을 알아내고 주변에 있는 자원을 활용해 혼자서 자신의 삶에서 부딪히는 다양한 문제나 장벽을 해결하고 헤쳐나가는 것이다. 사회복지사는 보통 당사자가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함께 하면서 얘기를 들어주기도 하고 여러 가지 정보를 주면서 격려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당사자는 이 과정에서 사회복지사 등 누군가에게 의존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사회복지사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당사자가 자신의 문제를 직접 직면해서 해결하려는 마음을 먹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사실 이럴 때 기다리고 기다리는 동안 포기하려는 당사자를 돕기 위해 인내심이 많이 필요하다.
사업에 실패한 후 여러 직장에 전전하다가 결국 자신의 초라한 삶에 대해 비관하며 술에 의존해서 살다가 이혼한 후 혼자서 고시원에서 생활하던 중년의 1인 세대인 K씨가 중독 문제 사례관리를 통해 병원에 꾸준히 다니면서 스스로 단주에 성공해내고 자활센터를 소개 받아 직업 훈련 과정에 꾸준히 참여해 손재주가 좋아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습득해서 도배사로서 직업을 갖게 되어 성실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자신의 삶이 긍정적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사회복지사는 K씨와 꾸준히 얘기 나누면서 지지하고 격려하면서 단주 과정을 지켜봤고, 단주에 성공한 후 새로운 직업을 갖고 싶다는 클라이언트에게 자활센터에 대한 정보를 주고 스스로 찾아가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자리를 의논해보도록 안내했을 뿐이었다. 모든 과정에서 K씨 스스로가 직접 부딪혀 감당하도록 도움을 주었다. 당사자인 K씨가 모든 과정에서 스스로 자신의 힘을 키워나가면서 삶에 대한 지배력을 갖게 된 것이다.
2) 대인 관계 차원
임파워먼트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통제력을 갖는 것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통제력을 가져야 한다. 보통 복지 서비스의 이용자나 주민의 경우 복지기관, 사회복지사, 후원자,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에 일종의 수직적인 관계가 형성된다. 일부러 그런 관계를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주는 자와 받는 자의 관계는 권력 관계로 구조화될 수밖에 없다. 그런 관계에서 낙인을 느끼기도 하고 심한 경우 수치심을 느끼기도 한다. 물론 그런 감정을 느낄 여력도 없이 극단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타인의 도움이 절실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은 도움을 받기만 하는 것보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거나 내 것을 나눌 수 있을 때 마음이 더 행복하다. 서로 주고받는 수평적인 관계가 형성될 수 있을 때 힘을 가진다. 도움을 받기만 하는 사람은 항상 빚을 진다는 생각을 하기에 타인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삶을 살아가야 하고, 그로 인해 자신의 삶에 통제력을 갖기 힘들다.
수급자 어르신은 복지관을 통해서 후원 물품을 받거나 교회와 이웃들이 주는 음식이나 김치가 고맙지만, 마음 한편은 항상 불편한 경우가 많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는 항상 받기만 하는 신세이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는 사람이야. 나도 도움을 주고 싶은데 말이야!” 그런 어르신에게 사회복지사는 다른 어르신과 뜨개질 모임에 참여하시도록 권유하였다. 뜨개질로 만든 수세미나 목도리를 모아서 주변 이웃들에게 나누고 복지관이나 동사무소의 직원들에게 선물하면서, “받기만 하다가 이렇게 선물하고 나누니까 너무 좋아요! 주니까 더 행복하네요. 더 많이 만들어서 나눠야겠어요.” 어르신은 함께 참여하시는 어르신들과 함께 서로 이야기도 나누고 음식도 나누고 여러 가지 삶은 나누기에 항상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씀하셨다. 어르신은 삶의 여러 가지 측면에서 자신감도 생기시고 즐거운 마음이 많아지셨다고 기뻐하셨다.
3) 사회 구조 차원
임파워먼트는 개인적 차원과 대인 관계 차원과 같은 미시적인 차원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무기력하게 되는 것은 우리 전체 사회가 가진 문화나 제도인 경우도 있다. 이런 문화나 제도가 사람들의 삶에 불이익을 가져다주거나 장벽으로 존재할 경우 이들이 바뀌기 전까지 괴롭고 불편해도 감수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사회복지사는 복지 실천을 통해 이러한 구조적인 시스템을 개선하고자 노력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실천의 경우 사회복지사 혼자서 그 일을 감당할 수는 없다. 임파워먼트 실천은 어떤 지역사회 구조, 제도, 관행 등을 통해서 피해를 보고 있는 당사자의 참여를 통해 가능해진다. 당사자가 어떤 문제를 인식하고 그 문제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도록 돕는 것에서 사회복지사의 실천이 시작될 수 있다. 그리고 비슷하게 특정 문제를 인식하는 당사자가 함께 연대하는 모임을 통해 지역사회에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드는데 사회복지사가 역할을 하게 된다. 지역 언론을 통해서도 보도되기도 하고 최근에는 SNS를 통해서도 공유될 수 있다. 같은 문제에 대해 공감하는 일반 시민이나 주민의 관심이 확장되면 정치인이나 행정에서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 제도나 정책을 바꾸는데도 당사자가 직접 주도적으로 참여해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가장 거시적 관점의 임파워먼트라고 할 수 있다.
영구임대 아파트에 거주하는 휠체어 이용 주민은 아파트가 처음 건설될 당시의 경사로를 오랫동안 불편하게 이용하면서도 참고 지내왔다. 아파트 입주 초기에는 폭이 좁은 수동 휠체어를 기준으로 경사로가 만들어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전동 휠체어나 전동 스쿠터를 사용하면서 경사로가 너무 비좁아 부딪히는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해 밖으로 나가는 것을 자제하며 살아가야 했다.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살아가는 장애 주민 당사자에게 그 상황을 감수하면서 살 것인 지에 문제 제기를 통해 본인과 비슷한 상황의 휠체어 이용 주민과 함께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결국 모임을 결성하도록 사회복지사는 돕는다. 지방자치단체에도 그 모임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임대 단지 환경 개선에 직접 책임을 지고 있는 공기업에도 개선을 요구하게 하였다. 모든 과정은 사회복지사가 돕기는 하지만, 당사자가 만든 모임을 중심으로 직접 문제를 제기하게 하였다. 그 과정에서 두려움을 느껴 포기하려는 마음도 있었지만, 사회복지사가 격려하고 촉진해 다시 포기하지 않고 힘을 내 끝까지 경사로를 안전하게 넓히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복지 실천에서 근본적이고 본질적이라 할 수 있는 관점의 변화로서 ‘임파워먼트’의 의미와 관점을 소개해보았다. 자립(independence)이나 독립을 지향하는 복지 현장이지만, 실천의 결과는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서비스 수혜자로 남게 하는 실천이 수행되는 경우가 많다. ‘임파워먼트’는 ‘사람 중심’, 더 정확하게 ‘당사자 중심’의 본질을 복지 실천의 관점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표현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복지 실천에서 기술이나 방법을 중심으로 매뉴얼이나 지침에 집중하여 실적을 만들어내는 실천을 하는 것이 아니고, 당사자의 힘을 키워냄으로써 당사자 중심의 가치, 사람 중심의 가치가 회복하고 사회복지사의 역할을 새롭게 가치 부여(revalorization)하고 싶었다. 복지 현장에 임파워먼트의 가치를 이해하고 몸소 실천하는 현장이 많이 부족해지고 있어 아쉬움이 많다. 어렵지만 의미 있게 실천할 수 있는 복지 현장이 되기를 희망한다.
댓글
댓글
댓글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