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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똑 6개월, 한화현 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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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뚝뚝의 대명사였던 50대 초반의 남성 주민이 있었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에 ‘이.제.그.만.와.’라는 메시지가 묻어나왔지만 굴하지 않고 한 달에 한 번 만나 뵈었다. 6개월을 만난 어느 날. 안부 인사를 위해 전화 연락하였더니 안 그래도 궁금한 게 있다고 했다. 의외의 반응에 반갑기도, 당혹스럽기도 했다.

“내가 빚이 조금 있는데, 누구한테 들으니 어떻게 하는 방법이 있다고 하던데, 그거 어디에다가 알아보면 되는지 좀 물어보려고요.”

머뭇거리며 채무상담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어보았다.

“그것만 좀 해결되면 마음 좀 편히 지금처럼 일하면서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한 달에 한 번 반년이 쌓여 고충을 말한 건지, 적기에 내가 생각이 났는지 잘 모르겠다. 반년의 시간이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사람으로 인식되었을지도.

한화현 사회복지사



서울시립대학교종합사회복지관의 한화현 사회복지사가 000님의 집을 방문한 지 6개월이 되었다. 말이 방문이지 일방적인 노크요 대답 없는 안부 인사였다. 그러나 멈추지 않았다. 사실 정기적으로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는 것 외에 달리 방법도 없었다. 그런데 반년이 지난 8월에 관계의 문이 열렸다. 빚이 있다고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고 도움을 요청했다. 우리가 이론으로는 알지만 실제로는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당사자가 원하는 시점에 당사자의 선택으로 시작되는 관계가 맺어졌다.


사회적 고립 가구 관련 실천의 어려움은 대상자가 정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동안의 실천은 대상자가 분명했다. 아니면 일정한 기준으로 모집해서 목표한 인원이 모이면 시작했다. 그런데 사회적 고립 가구 실천은 시작했는데 대상이 없다. 대상을 찾는 것부터가 과제이다. 참 낯선 방식이다. 사업이 시작되었는데 대상자가 없다니. 사실은 없는 게 아니고 어딘가에 있지만 말이다.


다른 방법은 없다. 찾아 나서는 것이다. 주민과 주민조직을 활용해도 나가는 것은 변함이 없다. 결국 어느 집 앞에 서서 문을 두드려만 한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한가위 명절 선물을 전달할 때 듣는 감사와 환대가 아니다. 우리의 방문에 오히려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나마 반응이라도 보이면 나은 편이다. 무응답은 더욱 사람을 지치게 한다. 악플보다 무플이 더 무섭다는 말이 실감 난다.


사회적 고립 가구를 찾아 나서는 실무자에게 한화현 사회복지사가 말해준다. ‘오랫동안 두드리기’이다. 먼저 '오랫동안'을 생각해보자. 한번 만나서 친해진 친구는 없다. 첫눈에 반해서 결혼하는 건 아주 특별한 경우다. 관계에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최소한의 관계도 두 계절은 지나야 한다. 물론 자주 만나면 시간을 줄일 수는 있다. 여행으로 2박 3일을 같이 먹고 자고 생활하면 단시간에 친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영국의 복지를 성찰한 책 ‘래디컬헬프’의 프로젝트가 반년 정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역에 들어가서 관계를 맺는 이유가 있다. 관계에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두드리기’이다. 관계 맺기도, 인사 나누기도, 함께 산책하기도 아니다. ‘두드리기’는 실무자의 몫이지만 여는 것은 당사자의 몫이다. 두드리기는 그렇게 당사자의 몫을 인정하는 것이다. 생명의 위협에는 당사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먼저 들어가야 한다. 당사자의 선택보다 생존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두드리기’는 당사자의 선택을 인정하고 기다리겠다는 뜻이 담긴 행동이다. 거리를 두되 단절하지 않고 곁에 있겠다는 말이다.


000님은 6개월 만에 문을 열었다. 그러나 그 시간이 얼마나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바로 열릴 수도, 반년이 넘어도 열리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는 열리지 않는 문을 ‘거부’라고 표현하는데 더 정확한 표현은 당사자의 ‘의사 표현’이다. 다만 이런저런 이유로 내가 지금 문을 열지 않겠다고 차분히 말하지 않을 뿐이지 그 뜻을 닫힌 문에 담은 것이다.


물론 두드리는 것, 무응답을 견디는 것, 그것을 지속해서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한화현 사회복지사는 그 시간을  “오늘은 어떤 표정으로 거절당할지 벌렁벌렁한 가슴을 부여잡고 팀원들과 함께 고시원 문을 두들겼다.”라고 말했다. 관계는 그렇게 벌렁벌렁한 가슴 너머에서 시작되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이제 고작 한 번이었는데, 지난여름 무더위에 겪어야 했던 허무한 문 두드림이 보상받는 것만 같다. 내가 언제 그랬냐 싶게 벌렁벌렁한 가슴에 설렘이 깃든다. 마음만 그런 게 아니다. 발은 이미 힘차게 새로운 고시원으로 향한다. 작은 보람의 힘이다. 역량은 열정과 의지만으로 되지 않는다. 이렇게 작은 성취, 소소한 보람이 있어야 한다. 한화현 사회복지사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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