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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개의 바람, 천개의 주민모임(영등포노인종합복지관 늘봄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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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 개의 바람

천 개의 바람이 되었죠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죠



추모곡으로 알려진 ‘천개의 바람이 되어’는 멜로디만큼이나 가사의 울림이 있다. ‘나는 천 개의 바람 천개의 바람이 되었죠’ 육신은 사라지지만 세상 어디에서나 바람처럼 함께 있으니 슬퍼하지 말라고 말한다. 주민 소모임을 생각하면서 ‘천개의 바람이 되어’가 생각난 이유는 바람처럼 주민 모임이 건물과 프로그램과 평가에 갇히지 않고 지역 어디에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과거의 복지를 쉬운 말로 표현하면 ‘주는 복지’였다. 굶는 시절에 필요한 건 위로가 아니라 밥이었다. 밥을 주고, 잠자리를 마련해 주고, 옷을 주는 게 복지였다. 다른 것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도 ‘주는 복지’만 하고 있다면 문제다. 주는 게 잘못이 아니라 시대가 달라져서 그렇다. 여전히 복지자원은 부족하지만, 정확히 따지면 분배와 전달의 문제가 더 크다. 절대적 빈곤보다 상대적 빈곤이 더 심각하다. 여전히 집이 없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빌딩을 소유한 사람이 있다. 밥과 옷이 없는 사람에게는 ‘주는 복지’가 유효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시대가 되었다.


지금은 ‘주고받는 복지’의 시대다. 공급자가 수요자가 되고, 수요자가 다시 공급자가 되는 시대다. 사랑을 받기만 하면 욕심쟁이가 되고 주기만 하면 메마른다. 사랑은 주고받아야 한다. 복지도 마찬가지다. 주기만 하면 구호가 되고, 받기만 하면 적선이 된다. 주고받아야 복지다. 제일 먼저 주고받아야 하는 것은 감정이다. 공감이 생겨야 복지란 말이다. 그래서 이제는 도시락을 전달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되고 사회복지사의 주도로 주민 모임이 유지되어서도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영등포노인종합복지관의 늘봄밥상에서 힌트를 얻는다. 늘봄밥상은 늘(늘 함께하는 동년배 어르신들이), 봄(봄처럼 따뜻하게 서로 의지하며 돌보는 삶), 밥(밥상을 마주하며 나누는 이야기를), 상(오늘 인생 최고의 밥상으로 함께합니다)을 줄인 어르신 소모임이다. 22년 말 기준으로 24개의 소모임이 운영 중이다. 주민 소모임이라고 이름을 붙였지만, 실상은 사회복지사의 주도로 운영되는 모임이 있는데 늘봄밥상은 이름 그대로 주민들의 자발적 소모임이다. 늘봄밥상이 이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확산하는 이유가 있다.


첫째, 작은 인원으로 모였다. 기관에서 전 직원 회식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은 같은 테이블에 앉은 4~6명 정도다. 나머지는 같은 장소만 사용하고 다른 테이블에서는 무슨 이야기가 진행되는지도 모른다. 가끔 들리는 웃음소리로 분위기를 알 수 있을 뿐이다. 공동체는 엄밀히 말하면 소모임으로만 가능하다. 공동체의 필수 요소는 대화인데 6명만 넘어도 어렵기 때문이다. 20명이 모이는 주 민모임보다 4명 모이는 5개의 주민 모임이 더욱 긴밀해지고 오래가는 이유다.


둘째, 어디에서든 모인다. 작은 인원으로 구성되었다면 장소 선정이 자유롭다. 단체 여행과 소그룹 여행의 차이다. 복지관 프로그램실, 로비, 동네 카페, 공원, 식당처럼 소그룹이면 어디든 가능하다. 장소가 자유롭다는 말은 모이기가 편하다는 말이다. 편해야 발이 뒤따른다. 인원수가 많고 사회복지사가 주도하면 어쩔 수 없이 복지관으로 장소가 한정된다. 그나마 시간도 자유롭지 못하다. 사람에 장소를 맞추는 게 아니라 장소에 사람을 맞추게 된다. 소모임은 사람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시간이다.


셋째, 소모임과 지역복지에 대한 기관장의 이해가 깊다. 앞선 두 가지를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조직이 이러한 소모임의 특성을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지지해야 한다. 특히 리더의 이해는 필수다. 주민 3명이 동네 카페에서 모여 수다를 떨어도 주민 모임으로 이해하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거기에 사회복지사가 끼어서 같이 시간을 보내고 결과 보고가 없어도 지역복지로 이해하는 안목 말이다. 영등포노인종합복지관의 늘봄밥상이 가능한 이유는 관장님의 이러한 안목과 이해 때문이다. 주민 3명이 모여도 300명 모인 모임처럼 인사 말씀을 해주시고, 동네 카페의 수다 모임도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는 관장님의 리더십이 늘봄밥상의 보이지 않는 자원이다.


물론 복지시설의 모든 프로그램과 행사와 모임이 늘봄밥상 같을 수는 없다. 지역과 조직, 리더십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비교할 일도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말할 일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 곁에 사는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가를 생각하면 늘봄밥상과 같은 시도는 계속 이어져야만 한다. 원래 바람은 작은 기압과 온도의 차이에서, 나비의 작은 날개 짓에서 시작된다. 일단 시작만 되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우리나라 어딘가에서 늘봄밥상과 같은 작은 날개 짓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지금은 작은 바람이지만 끝이 없이 지역의 이곳저곳을 뒤덮을 것이다. 인간의 어떠한 구조물로도 막지 못하는 바람처럼 제도, 정책, 평가로 가두지 못하는 바람이 될 것이다. 3명의 모임이 천개의 바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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