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 본문

대변을 금지하는 대변기

  • 조직역할

국도로 이동하는 자차 출장길이었습니다. 배가 아팠습니다. 주유소에 들려 해결하고 싶었지만 연료가 가득했습니다. 참고 참다가 드디어 식당을 발견했습니다. 먼저 음식을 주문하고 화장실로 달려갔습니다. 쾌적하지는 않더라도 나름 깨끗한 곳이었습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바지를 내렸는데 다음과 같은 글귀가 문짝에 붙어 있었습니다. "대변금지" 아무리 봐도 모양도 대변이기고 위치도 딱 대변기 자리인데 대변이 안된다고 합니다. 변기가 자주 막힌다는 친절한 안내문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바지를 내리다 말고 큰 고민에 빠졌습니다. 저 경고문을 무시하고 일을 보아야 할까? 아니라면 나는 이제 어쩌야 할까? 경고문을 무시해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곤란한 일을 상상해보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저는 바지를 추스리고 밥을 먹으로 갔습니다. 어쩌겠습니까? 주문을 했으니 먹기는 먹어야죠. 다 먹으면 또 부담이 될 것이기에 대충먹고 나서 다시 출장길에 올랐습니다. 이미 출장의 목적은 사라져버린지 오래이고 빨리 다른 화장실을 찾는 것이 목적이 되었습니다. 본능과 경험이 즉각 발동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근처에 평생학습관이 있었고! 분명 평생학습관은 개방형 화장실일 것이기에 차를 세우고 쾌적한 환경에서 일을 치뤘습니다.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대변기는 왜 거기에 있을까요? 모양은 대변기인데 역할은 소변기라면 굳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야 이유가 있을까요? 문제의 원인이 명확하기에 솔루션은 간단합니다. 대변기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수리를 해야겠죠. 그것도 안된다면 새로운 대변기로 교체하면 됩니다. 그런데도 수리나 교체를 하지 않은 것은 분명 주변에 다른 대체 화장실이 있을 터였습니다. 정 급하지 않은 손님들은 저 처럼 참을 것이고 참지 못하는 손님은 모험을 하거나 주인에게 대체 화장실을 물어보았을 것입니다.

 

조직에도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리더들이 있습니다. 명함은 리더인데 역할은 신입직원이라면 양성을 해야겠죠. 하지만 양성기간 동안 조직과 팀은 목적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출장의 목적을 잊어버린 저 처럼 말이죠. 구성원들이 다른 곳으로 떠날 수도 있습니다. 밥을 대충 먹고 다른 화장실을 찾아간 저처럼 말이죠. 리더가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자리만 차지하고 있으면 그곳은 목적이 없는 곳이기에 조직이라 할 수 없습니다. 목적이 없는 곳은 조직이 아닙니다. 대변기는 있지만 소변기 역할만 하는 그 화장실처럼 말이죠


리더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면 양성보다는 교체가 유익합니다. 그러나 교체는 쉽지 않죠. 리더의 양성과 육성제도가 조직에 필요한 이유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자신이 리더가 될 경로에 있다면 스스로의 학습도 필요합니다. 누구를 리더로 세울지에 대한 조직의 판단도 중요합니다. 대변기 자리에 소변기를 쓰면 안되듯이 말이죠.

 

누구나 어떤 식으로든 리더가 됩니다. 나는 내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자문이 필요합니다.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만약 내가 역할을 못한다면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합니다. 적어도 역할을 못하는 대변기는 되지 않아야 합니다.

※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2.0 대한민국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댓글

댓글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