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지밖복지 By 노수현
- 2025-09-16
- 148
- 0
- 0
고립 이슈에 꼭 따라붙는 말이 있습니다. 발굴입니다. 고립 당사자는 기존의 방법으로는 찾을 수가 없으니 이게 시작이 되는 건 맞습니다. 그러나 발굴이란 용어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주로 연상하는 단어의 뜻이 있습니다. 저는 지금 이 글을 안동의 한 카페에서 쓰고 있습니다. 이제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안동 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여러 가지 메뉴가 나오겠죠. 그래도 찜닭은 꼭 있지 않을까요? 춘천 닭갈비, 상주 참외, 문경 사과처럼 말이에요.
발굴도 마찬가지입니다. 발굴이란 단어를 들으면 고고학 현장이 생각납니다. 사람들의 생각이 편협한 게 아니라, 언어가 사람들의 생각을 담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유물 발굴 현장을 생각해 보세요. 힘들고 고되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 떠오릅니다. 고립에 발굴을 붙이면 그렇게 됩니다. 시작도 하기 전에 험난한 미래가 그려집니다. 부담만 쌓이고 한숨만 커집니다. 무엇보다 사람은 발굴의 대상이 아닙니다.
발굴보다는 발견입니다. 물론 발굴에는 적극적인 의지가 담겨 있어서 정책 용어로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실천마저 정책 용어를 따라서 쓸 필요는 없습니다. 문서에는 통용되는 단어를 쓰더라도 실천할 때는 바꿔야 합니다. 발견은 발굴보다 의지가 앞서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연에 가깝습니다. 퇴근길 담장 위에 능소화를 발견하지, 발굴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만 자생하는 능소화를 찾는 행위는 발굴이지만, 퇴근길에 만나는 능소화는 발견됩니다.
특별한 능소화를 찾아나서는 식물학자처럼 고립 당사자를 발굴하려고 애쓰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발굴이 아니라 발견입니다. 그러면 다시 퇴근길 능소화로 돌아가 볼까요? 어떻게 능소화를 발견했는지 생각해 보세요. 능소화가 내가 지날 때만 피는 게 아닙니다. 사실 어제도 피었는데, 어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답이 있습니다. 여유와 관심이 있어야 보입니다.
고립 당사자를 발굴하겠다고 잔뜩 힘을 주고 나서면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에 대한 애정 없이 사업을 진행하겠다는 의지만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고립을 발굴하고 해소하겠다는 의지보다는, 지역 주민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러 간다는 마음으로 출발해야 합니다. 인류의 과제인 고립 사업을 잘 해내겠다는 억지보다는, 오늘 만나는 한 사람에게 마음을 다하겠다는 겸손한 애정이 필요합니다.
어떤 때는 느려 보이는 게 가장 빠를 때가 있습니다. 사람을 아끼는 마음으로 동네에 나가면 바람이 말해 주고, 나비가 알려 주고, 하늘이 길을 터줍니다. 그동안 만날 때마다 손잡고 인사드린 할머니가 바람입니다. 복지관을 아끼는 주민이 나비입니다. 그동안 내가 마음 쏟았던 사람들이 하늘입니다. 바람과 나비와 하늘 없이 혼자 걷는 길은 외롭습니다. 고립 당사자를 찾는 여러분이 그렇게 고립되어 있지는 않나요?
댓글
댓글
댓글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