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본문

반려견 중성화, ‘본성’이라는 말 뒤에 숨은 진짜 문제

  • 복지속동물
  • 반려견중성화
  • 유기동물예방

반려견 중성화, ‘본성이라는 말 뒤에 숨은 진짜 문제

 

 오늘날 우리 사회는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여기는 인구가 꾸준히 늘어나면서 많은 분들이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을 통해 정서적 안정과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의 이면에는 간과할 수 없는 여러 문제들도 존재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유기동물의 발생이며, 여기에 이웃 간의 갈등이나 공동주택 내 소음·위생 문제, 반려동물의 문제행동 등도 더해지고 있습니다.

또한, 반려동물이 고령화되면서 각종 암이나 퇴행성 질환, 생식기 관련 질병에 걸리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특히 암컷의 유선 종양, 자궁축농증이나 수컷의 고환암 등은 나이가 들수록 발병 위험이 커지는 질환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예방하고, 반려동물과 사람이 함께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 중요한 수단이 있습니다. 바로 중성화 수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보호자가 중성화를 선택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다양합니다. 어떤 분들은 수술이 불쌍하다는 감정적 이유를 들고, 또 어떤 분들은 중성화를 하면 성격이 변한다거나 건강에 해롭다는 오해를 가지고 계십니다. 또 일부는 자연스럽게 두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면서 중성화를 반대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생각의 많은 부분은 과학적 근거보다는 감정이나 편견에 기반해 있으며, 인간의 감정과 경험을 동물에게 그대로 투사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반려동물은 인간과 달리 번식에 대한 계획이나 양육 책임이 없으며, 통제되지 않은 번식은 오히려 더 큰 고통을 낳는다는 점을 간과하기 쉽습니다.

 

본성이라는 말 뒤에 숨어 있는 모순

 

중성화를 둘러싼 반대 논리 중 대표적인 것이 동물의 본성을 거스르면 안 된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이 주장은 현실과 모순됩니다. 오늘날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반려견은 이미 자연 상태의 야생동물이 아닙니다. 인간은 오랜 시간 개를 가축화하고 교배하며 품종을 만들어왔습니다. 사냥, 경비, 반려 등 자신의 필요에 따라 번식 방향을 통제해온 것도 인간입니다. 이미 본성은 인간의 손에 의해 바뀌어온 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품종 개량과 반려동물 산업화는 아무런 문제로 제기하지 않으면서, 정작 반려견의 건강과 복지를 위해 시행하는 중성화 수술에 대해서만 본성을 거스른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모순된 태도입니다. 본성을 거스른다는 말은 종종 책임을 회피하고 불편한 현실을 외면하는 방패막이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만약 정말로 동물의 본성을 존중하고자 한다면, 인간이 이미 얼마나 깊게 반려견의 본성에 개입해왔는지를 먼저 돌아보아야 합니다. 본성을 가장 많이 바꾼 주체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외면한 채 중성화만을 문제 삼는 것은 정직하지 못한 태도입니다.

 

중성화의 구체적인 이점

 

중성화 수술은 단순히 번식을 막는 수단이 아니라 반려견의 건강과 행동 안정, 보호자와의 관계 개선에 있어 실질적인 이점을 제공합니다. 먼저 질병 예방 측면에서 중성화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암컷은 자궁축농증, 난소낭종 등의 생식기 질환을 예방할 수 있고, 유선 종양의 발생 확률을 현저히 낮출 수 있습니다. 특히 유선 종양은 발병 시 악성일 가능성이 높아, 조기 중성화는 건강한 노년을 지키는 중요한 선택이 됩니다. 수컷은 고환암을 완전히 예방할 수 있는데다가 전립선 질환의 발생 위험도 줄어듭니다. 또한, 성호르몬 과다로 인한 근육 위축이나 탈장 등도 일정 부분 예방 효과가 있습니다.

또한, 행동 문제 개선에서도 긍정적인 효과가 뚜렷합니다. 중성화를 하지 않은 수컷은 발정기 암컷의 냄새에 반응해 마운팅 행동을 하거나 영역 표시를 위한 마킹 행동을 자주 하게 됩니다. 중성화 후 이러한 행동은 뚜렷하게 감소합니다. 공격성 역시 완화되어 사회성이 높아지고 다른 동물이나 사람과의 관계가 안정됩니다. 번식 욕구가 충족되지 못한 상태로 살아가는 것은 반려견에게 스트레스가 될 수 있는데, 중성화는 이러한 스트레스를 줄여 정서적 안정을 돕습니다.

 external_image

사진설명: 반려견 중성화의 잇점을 설명한 영국 Humane Society의 홍보자료 https://www.bvihumanesociety.org/spayneuter.html


책임 없는 번식이 만들어낸 유기의 현실


반려견은 한 번 출산할 때 네다섯 마리, 많게는 여덟 마리 이상의 새끼를 낳는 경우가 흔합니다. 이 모든 생명을 책임 있게 돌볼 수 있는 입양자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은 잘 알려진 현실입니다. “한 번만 낳게 하겠다는 말은 대부분 현실에서 지켜지지 않게 되고, 이는 더 나아가 무분별한 입양을 부추기고 결국 유기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각종 통계 자료를 살펴보면 반려동물을 입양하게 되는 경로의 약 절반가량이 지인 간의 무료 혹은 유료 분양을 통해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책임 있는 입양 절차가 생략되는 경우가 많아서 충분한 돌봄 계획 없이 입양이 이루어지다 보니 다시 유기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실외사육견, 이른바 마당개의 문제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실외에서 사육되는 개들은 대부분 중성화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로 방치되어 있어서 발정기마다 자유로운 번식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이 과정에서 태어난 새끼들이 입양되지 못하고 버려지거나 길거리로 방치되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결국, 실외사육견은 유기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는 주요 요인이 되고 있기 때문에 중성화를 미루거나 반대하는 태도는 이러한 악순환을 끊지 못하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전국의 유기동물 보호소는 이미 포화 상태인데, 이들 중 상당수는 중성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태어난 반려견들이 주요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중성화를 미루거나 반대하는 태도는 단순한 개인의 선택 문제가 아니라 결국 생명의 문제로 직결됩니다.

 

사회복지의 시선에서 본 반려동물 중성화

 

중성화 문제는 개인의 선택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유기동물의 증가는 곧 지역사회 복지 문제로 이어집니다. 유기동물 구조와 보호, 입양 관리, 민원 처리에 막대한 공공 자원이 투입되고 있으며, 이는 사회복지 행정에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취약계층에게는 중성화 수술 비용이 큰 경제적 부담으로 작용해 원치 않는 출산이 반복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회복지 현장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연결고리가 될 수 있습니다. 반려인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수술비와 이동 지원을 연결하여 지자체·병원·민간단체가 협력하는 지원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역사회 차원에서 책임 있는 반려 문화와 복지 시스템을 확산시키는 것도 중요한 과제입니다.

 

국내 지자체들은 점차 중성화 지원 정책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무료 또는 저비용 수술을 지원하거나 보호소 입소 전후 중성화를 의무화하고, 일정 기간 내 수술을 완료하면 비용을 환급해주는 제도를 시행하는 곳도 있습니다. 이는 동물보호 차원을 넘어 유기동물 발생을 줄이고 지자체의 복지 예산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정책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external_image

사진설명: 마당개 중성화 지원사업에 참여를 독려하는 경기도의 캠페인 안내 이미지(출처: dailyvet.co.kr)


해외에서는 더욱 체계적인 정책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ASPCA는 지역 커뮤니티와 협력하여 ‘Spay/Neuter Clinic’을 운영하며, 저소득층 가정의 반려동물 중성화를 무료 또는 저비용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도시 차원에서는 중성화를 하지 않은 반려견에 대해 등록료를 높게 부과하거나, 일정 시기 내 수술을 완료하면 감면 혜택을 제공하는 방식도 시행 중입니다. 영국의 Dogs Trust는 지자체와 협력하여 이동식 중성화 진료 차량을 운영해 농촌과 취약 지역에서도 접근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델은 공공과 민간이 함께 책임을 나누는 복지 실천의 좋은 사례입니다.

 

 

반려견 중성화는 선택이 아니라 책임 있는 보호의 출발점입니다. 생명을 사랑한다는 것은 감정이 아니라 실천으로 증명되는 일입니다. 본성이라는 단어는 고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그 본성을 가장 많이 바꾸어온 주체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중성화는 생명을 줄이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불필요한 고통을 예방하고 반려견의 건강과 정서적 안정을 지키는 동시에 사람과 동물이 함께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복지적 실천입니다.

중성화를 둘러싼 오해를 바로잡고 취약계층을 지원하며, 지자체와 민간이 협력하는 정책과 실천이 확산될 때, 반려동물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진정한 복지 공동체가 가능해질 것입니다. 책임 있는 돌봄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댓글

댓글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