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지속동물 By 김성호
- 2025-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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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학대 가해자 수강명령, 처벌을 넘어 회복으로 — 이제 사회복지가 준비할 때입니다
최근 법무부의 통계에 따르면 동물학대 범죄로 처벌받는 인원이 매년 증가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인식의 변화와 함께 법원은 단순한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를 넘어, ‘수강명령’ 또는 ‘치료프로그램 이수명령’을 병과하며 재발 방지와 인식 개선을 꾀하고 있습니다.
2022년 전면 개정된 「동물보호법」은 이러한 변화를 제도적으로 반영했습니다. 동물학대 행위자에게 최대 200시간의 범위 내에서 상담과 교육을 병행하도록 명령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형벌을 부과하는 것을 넘어 회복적 사법정의(restorative justice)의 원리를 도입한 제도적 진전이라 평가할 수 있습니다. 학대 행위를 한 사람에게 단순히 ‘벌’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가 자신의 행동을 이해하고 성찰하도록 돕는 과정을 제도화한 것입니다.

그림설명: 국내 동물학대범 법정 판결 결과를 다룬 한 언론기사의 자료 (출처: 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8530
그러나 제도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한 교육 내용과 인력, 기관은 아직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법원이 명령을 내리더라도 이를 실제로 수행할 표준화된 프로그램, 전문 강사, 공인기관이 부족하여 실질적 변화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는 사회복지의 참여와 실천이 필요합니다. 사회복지는 처벌과 교정의 중간 지점에서 인간의 변화를 돕는 회복의 실천 체계를 설계할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입니다.
동물학대는 인간사회에 대한 경고이자, 개입이 필요한 현장입니다
동물학대는 단순히 동물을 향한 폭력이 아니라, 인간 사회 안의 폭력 구조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가정폭력, 아동학대,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과 동물학대는 서로 얽혀 있으며, 한 영역의 폭력이 다른 영역으로 확산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2025년 미국의 범죄정보시스템(NIBRS) 분석에서도 동물학대가 피해자를 위협하거나 통제하는 수단으로 사용된 사례가 다수 확인되었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동물학대가 이미 발생한 폭력이며, 더 큰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 사회적 경고임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법적 처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가해자가 자신의 행동이 생명과 사회에 어떤 상처를 남겼는지 인식하고, 그로부터 변화를 시작할 수 있도록 돕는 회복의 과정이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사회복지는 이러한 과정의 중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사회복지는 인간의 행동과 감정을 이해하고, 폭력의 근원을 다루며, 공감과 책임을 회복시키는 전문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재활을 넘어 공동체 전체의 회복을 촉진하는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수강명령, 사회복지가 설계하고 실행해야 할 회복의 과정
사회복지적 접근은 수강명령을 단순한 법적 절차가 아닌, 인식 전환과 관계 회복의 기회로 바꿀 수 있습니다. 프로그램은 법적 책임과 사회적 파장에 대한 이해로부터 출발하여, 감정 인식과 공감 능력을 높이는 심리사회적 교육, 동물의 생리·행동 이해를 통한 돌봄 태도 훈련, 상담 및 지역사회 봉사 연계를 통한 사회 복귀 지원으로 구성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가해자가 스스로 “내 행동이 어떤 생명과 관계를 파괴했는가”를 깨닫도록 돕는 것입니다.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성찰과 변화의 과정이 되어야 하며, 그 안에서 사회복지는 상담자이자 조력자, 그리고 공동체 회복의 연결자로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또한 교육 전반에는 인간, 동물, 환경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One Welfare의 관점이 필요합니다. 사회복지는 이 관점을 바탕으로 생명존중과 상호의존의 가치를 전달하며, 개인의 변화가 곧 공동체의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돕습니다.
수강명령이 실질적인 변화의 과정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교육 내용의 질과 운영 주체의 전문성이 확보되어야 합니다. 사회복지사, 수의사, 심리상담사, 동물보호활동가 등이 협력하여 복합 전문인력체계를 구성하고, 일정 기준을 충족하는 기관을 공식 교육수행기관으로 지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해외에서는 이미 동물학대 가해자에 대한 교육명령을 체계화한 사례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미국의 B.A.R.C.(Benchmark Animal Rehabilitative Curriculum)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동물학대 행위자에게 재발 방지와 인식 전환을 유도하기 위한 온라인 교육 과정으로 법원이나 검찰, 보호기관의 명령에 따라 참여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B.A.R.C.는 법조인과 수의사, 동물보호 전문가들이 공동 개발한 프로그램으로 현재 미국 내 여러 주에서 수강명령의 표준형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교육은 전면 온라인으로 운영되는데, 수강자는 얼굴인식 시스템을 통해 본인 인증을 거친 뒤 강의를 이수합니다. 전체 16개 세션, 약 8시간 분량으로 구성되어 있는 강의의 주요 내용은 동물의 감정과 인지 능력, 동물학대의 정의와 유형, 책임 있는 동물 돌봄,과도한 사육과 방치의 문제, 반려동물 포기와 재입양의 사회적 의미 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특징은 단순히 법률 조항을 나열하거나 윤리적 교훈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가 “동물이 느끼는 고통”을 이해하고 “자신의 행동이 생명과 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스스로 인식하도록 돕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입니다. 즉, 처벌의 연장이 아니라 회복의 과정으로서의 교육을 지향합니다.
물론 B.A.R.C.는 미국의 법제와 문화적 맥락 속에서 설계된 프로그램이기에 그 내용을 그대로 국내에 적용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사회복지적 관점에서 볼 때, 이 프로그램은 동물학대 가해자 교육을 단순한 형식적 절차가 아닌심리사회적 변화와 책임의 회복을 이끌어내는 과정으로 발전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입니다. 또한 온라인 교육의 접근성을 확보하면서도, 상담과 토론, 사례관리 등 사회복지사의 개입을 결합하면 국내에서도 충분히 응용 가능한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사진설명: B.A.R.C. 의 CI (출처: https://barceducation.org/
국내에서도 향후 동물학대 가해자 수강명령 프로그램을 개발할 때 B.A.R.C.가 보여주는 체계적 교육 구조와 인간-동물 관계 회복 중심의 접근은 좋은 참고가 될 것입니다.
다만 프로그램의 내용과 전달 방식은 한국의 법제, 문화, 사회복지 실천 현실에 맞게 새롭게 조정하고 보완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처럼 사회복지 분야는 수강명령을 통해 처벌 이후의 길을 회복의 길로 바꾸는 실천적 주체가 될 수 있습니다. 법원의 명령으로 시작된 교육을 가해자의 재활과 공동체 복귀로 이어지게 하는 것은 사회복지의 전문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사회복지계는 시범사업 형태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그 효과성을 검증하며, 표준화된 모델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법원의 명령을 받은 가해자가 일정 기간 동안 상담과 그룹교육을 병행하고, 사회복지사와 수의사, 상담전문가가 함께 운영하는 프로그램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교육 이후에는 재발 방지 인식, 책임감, 공감 능력의 향상 정도를 평가하여 프로그램의 성과를 검증하고, 지역사회 단위로 확산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은 단순한 교육사업이 아니라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다시 잇는 사회복지적 회복 실천이 될 것입니다. 사회복지는 폭력의 고리를 끊고, 상처 입은 관계를 다시 연결하는 일을 통해 진정한 의미의 예방과 치유를 이루어갈 수 있습니다.
동물학대 가해자 수강명령제는 우리 사회가 ‘처벌’에서 ‘회복’으로 나아가려는 방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제도가 실제로 회복의 과정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복지의 개입과 실천이 필수적입니다. 사회복지는 인간의 변화 가능성을 믿고, 관계를 다시 세우며, 공동체가 함께 책임을 나누는 과정을 설계할 수 있는 전문 영역입니다.
지금 사회복지계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합니다. 수강명령 프로그램의 표준화, 강사 양성, 효과 검증, 그리고 지역사회 연계 시스템을 통해 처벌 이후의 회복 과정이 제도 안에서 작동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제도는 이미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제는 사회복지가 그 제도를 살아 있는 실천으로 구현할 때입니다. 사회복지가 이 변화를 주도한다면, 그것은 인간과 동물이 함께 안전하게 살아가는 회복 공동체로 향하는 첫 걸음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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