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기록은 행정이 아닌 기획입니다: 인공지능 시대의 새로운 전문성"

  • 사회복지기획
  • 관계짓기
  • 인공지능
  • 암묵지와형식지
  • 디지털전환
  • 스마트워크
  • 기록의힘
  • 프로이트_직관

기록은 행정이 아닌 기획입니다: 인공지능 시대의 새로운 전문성

 

사회복지 현장에서 경력이 쌓일수록 사회복지사의 주민과 지역사회에 대한 직관력이 향상됩니다. 직관을 통해 가정방문을 위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느껴지는 공기, 대화 중간에 흐르는 미세한 정적이나 호소, 그리고 마주 잡은 손의 미세한 떨림만으로도 우리는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필요한지 본능적으로 알아차립니다. 사회복지 현장에서 오랫동안 일한 경력직의 날카로운 직관은 사회복지 실천의 중요한 능력으로 인정되어 왔습니다. 물론 모든 경력자가 동일한 능력을 지닌 건 아닐 겁니다. 매일매일 0.1%라도 조금씩 통찰력을 높이기 위해 습관을 기록하고 구조화하며 역량을 키워온 사회복지사와, 똑같은 경험을 어제와 같은 오늘처럼 수십 년간 반복해 온 사회복지사의 직관력과 통찰력이 같을 수는 없습니다.

사회복지사의 개별적 노력은 차치하더라도 사회복지 현장에서의 직관에 근거한 통찰은 도제식(수퍼바이저와 수퍼바이지의 관계)으로 전수되어 왔고 이는 사회복지현장의 실천력을 유지하고 향상시키는 일반적인 방식이었습니다.

 

도제 방식으로 전수되던 사회복지 현장의 직관과 이에 근거한 통찰은 몸으로 체득한 노하우인 암묵지의 영역이었습니다. 기록을 남기기에 버거운 현장의 행정적 과열은 사무실 책상의 컴퓨터 열기에 휘발되어 건조한 행정적 언어로만 남아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대상자의 욕구와 의지가 높음”, “사회복지사와의 관계가 원만함과 같은 건조한 행정 언어 속에 사회복지사의 치열한 고민과 현장의 온기는 담기지 않습니다. 경력직 사회복지사가 퇴사할 때마다 해당 지역사회의 문제해결 노하우가 함께 사라집니다. 문서화되지 않은 암묵지는 도제식 수퍼비전의 형식으로 전수된 분석되지 않은 직관의 영역입니다.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도구의 출현은 암묵지의 영역에 머물러 있던 지식을 체계적으로 정리된 지식, 즉 형식지로 전환하는 효율성을 극대화 시켰습니다. 직관은 유용한 인식적 도구이지만 이성인 분석과 검증을 통해 의식의 언어로 번역될 때 비로소 의미가 있게 됩니다. 또한 암묵지의 형식지화는 직관성에 근거한 판단이 가질 수 있는 소망 충족의 착각, ,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것을 직관으로 착각하는 암묵지의 위험성을 낮출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출현하기 이전에는 암묵지를 형식지로 전환하는 과정에 많은 투입이 필요했습니다. 수많은 기록과 분석에 일일이 인간의 지적 노동력을 투입해야 했고, 이는 물리적 시간과 비용에 있어 효용성의 문제를 발생시켰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전문성, 재정, 인력, 조직에 있어 일정 수준의 규모를 갖춘 조직에서만 한정적이고 전문적인 사례로 이를 제시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인공지능의 출현은 이러한 제한성을 해체하고 있습니다. 작은 조직도 인공지능을 활용해 당사자와 지역사회에 대한 직접적 개입의 효용성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또한 행정적 효율성과 비용편익에 갇혀 있던 사회복지 실천의 중요한 가치였던 개별화접근을 현장에서 구현하며 이를 행정의 언어로 번역하고 제도와 정책으로 전환 시킬 수 있는 모멘텀을 만들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 활용의 전제조건은 인공지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협업의 형식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사유를 인공지능에 외주화하지 않아야 합니다. 해석과 판단은 인간의 영역이고 근거 제시와 분석은 인공지능이 잘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인간이 해야 할 영역과 인공지능이 해야 할 영역은 잘 구분되어야 합니다. 몇 가지의 정보와 프롬프트로 문제 정의와 해법을 요구하는 방법으로는 당사자의 처지와 지역사회의 상황에 따른 맥락이 고려되기는 어렵습니다. 인공지능은 현재를 다룰 수 없습니다. 과거를 분석하는 일은 인공지능이 잘하는 영역이지만 현재를 다루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인공지능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선택은 개인의 몫이지만 인공지능은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이러한 전제조건에서 인공지능은 사회복지 전문성을 개별화된 지역사회와 주민의 관계적 맥락에서 해석하고 적용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으로 복지 현장에서 즉시 활용할 수 있는 부분 중 하나는 암묵지의 형식지 전환입니다. 암묵지의 영역에서는 직관’으로 정해진 답에 근거해 문제를 정의하고 해법을 제시하는 빈칸 채우기방식의 사회복지 실천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프로포절을 쓸 때 문제를 해석하는데 (정의하는데) 시간을 얼마나 할애하는지를 생각해 봅시다. 대부분 문제에 대한 답은 정해져 있고 정해진 답에 대한 근거와 논리를 찾는 경우가 많았을 것입니다.

 

암묵지의 형식지 전환은 문제 정의와 해법에 있어 추론의 과정을 통한 구조화 체계화된 접근의 강력한 근거와 논리가 됩니다. 과거에는 이러한 접근이 관련 전문성과 투입시간, 비용효용성 문제로 하기 어려웠지만, 인공지능의 출현으로 이를 획기적으로 효율화시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암묵지의 형식지화에 대해 인공지능을 활용하는데 있어 필요한 요소를 세가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기록의 습관을 복원하는 것입니다. 많은 n년 차 사회복지사들이 기록을 업무 부담으로 느낍니다. 하지만 인공지능의 멀티모달(Multimodal) 기술은 기록의 정의를 바꾸고 있습니다. 구조화되고 전문적인 문장을 쓰기 위해 고군분투하기 보다는 원자료를 잘 남기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주민과의 상담, 조직에서의 회의, 당사자의 가정과 지역사회 현장의 사진, 영상 등 현장에서 바로 생성되는 현재의 자료를 기록하고 남기는 습관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사회복지사의 직관과 느낌, 생각을 잘 기록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현장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혹은 상담 직후, 주민과의 활동에서 보였던 광경 등 느낀 감정과 생각을 스마트폰 등을 통해 기록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현장 따로 기록 따로가 아닌 즉시적 기록을 남기는 습관을 가지는 것이 스마트워크의 첫걸음입니다. 멀티모달을 활용하면 인공지능의 음성 인식 기술은 여러분의 거친 숨소리와 떨리는 음성까지 텍스트로 옮겨줍니다.

 

두 번째 단계는 인공지능을 또 한 명의 성찰적 대화 상대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빈칸 채우기를 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과 파편화된 정보들을 토대로 대화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통찰을 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 만난 어르신의 목소리가 한 톤 낮았고, 자꾸만 시선을 피하는 이유에 대해 인공지능과 대화를 해본다면 어떨까요? 마치 바둑기사가 인공지능과의 대결을 통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경우의 수를 발견하고 전략화시키는 것처럼요. 인공지능과의 질문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새로운 통찰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통찰을 다시 동료 또는 이해관계자와 대화하는 과정에서 맥락적 적용이 더욱 정교해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의존이 아닌 협업입니다. 사람과 인공지능의 협업으로 사회복지사 내면에 잠들어 있던 암묵적인 판단 근거들이 밖으로 끌어내는 것입니다.

 

세 번째 단계는 이렇게 도출된 개별적인 경험들을 기관의 자산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인공지능은 수만 건의 기록에서 공통적인 패턴을 찾아냅니다. 베테랑들이 위기 상황에서 공통적으로 취했던 행동,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던졌던 마법 같은 질문들을 모아 실천 매뉴얼논리 모델로 구조화합니다. 개인의 이 비로소 기관의 전문성, 형식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입니다.

 

인공지능의 발달은 이미 기술적 특이점을 넘어섰다고 생각됩니다. 지금 낯설게 느껴지는 변화가 생각보다 아주 가까운 시기에 일상적으로 적용될 것입니다. 두려워해야 할 것은 기술의 발전이 아닙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술은 보편성을 갖게 될 것이고, 얼리어답터가 아니더라도 상용화된 보편적 양상을 띠게 될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사용될 수 있는 기술을 상품화 하니까요.) 인공지능이 나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에게 내 자리를 내어주는 것을 두려워 해야 합니다. 돌아봐야 할 것은 내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를 살피는 것입니다. 해석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영역이고 아주 오랫동안 변화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사유를 외주화하는 것을 멈춰야만 인공지능은 진정한 협업의 파트너가 될 수 있습니다.

 

사회복지 기록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주민과 지역사회의 귀한 가치를 세상이 읽을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하는 도구로 인공지능이 잘 활용되기를 바라봅니다. 사회복지사의 머릿속에만 머물러 있는 그 귀한 지혜를 인공지능이라는 파트너와 함께 세상 밖으로 꺼낼 수 있다면, 사회복지 기록은 서류 더미를 넘어, 한 사람의 삶을 살리는 강력한 도구가 될 것입니다.

 

 

칼럼의 전제조건

1. 기술적 편리함에 앞서 당사자의 주체성을 존중하는 범위 내에서의 '윤리적 가이드라인'이 선행되어야 함. 또한 '비식별화 조치''폐쇄형 AI '과 같은 기술적 접근이 우선되어야 할 것임.


2. 칼럼에서 언급한 AI와의 협업에 있어 AI의 분석 결과는 확정적 진단이 아니라 가설적 제언으로 봐야 함. 최종 검증은 반드시 사회복지사의 '시좌'를 통해 이루어져야 함.


3. AI 사용이 사회복지 현장에 보편화되면, 결국 AI가 만들어준 유려한 문장을 그대로 복사하여 보고서나 수퍼비전 칸에 채우는 행정적 편의주의에 빠질 확률이 매우 높음. 이는 암묵지의 형식지화가 아니라, ‘사유의 소멸로 이어질 수 있음. 이를 방지하기 위한 비판적 질문 리스트나 사회복지사의 태도 등을 습관화 하기 위한 체크리스트 등을 만들 필요가 있음.


4. 지식 전수가 조직 차원에서의 보상과 연결되는 '지식 공유 시스템'으로 구축되어야 함. 기술이 경력직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교육자’ ‘수퍼바이저로 격상시키는 도구로 활용되어야 함.

※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2.0 대한민국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댓글

댓글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