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지관 사회사업 By 김세진
- 2026-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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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뉴스, 2026. 3. 28 화면 갈무리
최근 입양 관련 전문기관에서 입양 대상 아동을 지칭하며 ‘물량’과 ‘소진’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큰 사회적 공분을 샀습니다. 이런저런 상황으로 어려움에 놓인 아이들에게 적절한 가정을 찾아 연결하는 귀한 업무를 수행하는 공공기관에서, 어떻게 생명을 물건처럼 취급하는 단어를 공식적 자리에서 사용할 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는 단순한 실수가 아닐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사회사업 현장 의식 밑바닥에 당사자를 인격적 존재가 아닌 사업의 도구나 처리해야 할 일감으로 보는 시선이 깔려있지 않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1) ‘물량’과 ‘소진’은 물건(일감)을 부르는 말
사전에서 ‘물량(物量)’은 물건의 양을 뜻하고, ‘소진(消盡)’은 다 써서 없애버림을 의미합니다. 이 단어들은 공장에서 제품을 출하하거나 창고 재고 관리할 때나 어울리는 말입니다.
하지만 입양을 기다리는 아이들은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이고 딸입니다. 사회사업가와 동일한 인격적 존재입니다. 아이를 ‘물량’이라 부르는 순간, 아이가 가진 고유한 서사와 감정과 권리는 사라지고, 오직 행정 지표나 업무 추진 실적을 채우기 위한 숫자로 전락합니다. ‘소진’이라는 표현 또한 섬뜩합니다. 아이들을 적절한 가정으로 연결하는 과정은 한 생명의 삶을 꽃피우는 ‘살림’의 과정이어야지, 쌓여있는 재고를 해치우듯 ‘소비’하는 과정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회사업 현장이 아이들을 그렇게 바라보는 가운데, 우리 사회가 입양된 아이나 그 가족을 편견 없이 대해 주기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2) 사회사업 품격, 당사자의 자리에서 말하기
사회사업가의 말은 그의 품격을 담아내는 그릇입니다. 공공기관이나 사회사업 현장에서 당사자를 향해 이런 비인격적인 단어를 반복해서 사용한다는 건, 이미 그 조직 문화가 당사자를 ‘존엄한 인간’보다 ‘행정적 대상’으로 오래 바라봐왔다는 위험한 신호입니다.
홍성수 교수는 『말이 칼이 될 때』에서 혐오 표현이 일상화되는 배경에는 그 대상을 하찮게 여기는 구조적 차별이 있다고 분석합니다. ‘물량’과 ‘소진’이라는 말을 공공기관 내부에서 거리낌 없이 사용했다는 건, 어쩌면 현장 안에서 아이들을 ‘인격체’가 아닌 ‘일감’으로 여기는 문화가 뿌리 깊게 박혀 있지 않았을지 의심하게 합니다.
우리 현장에서 당사자를 ‘케이스’나 ‘일감’으로 부르기 시작하면, 그들을 돕고 싶어 시작했던 사회사업가의 첫마음은 메마르기 마련입니다. 아이들을 ‘빼내야 할 물량’으로 여기는 시선 속에서 진정한 아동 복지를 이루기 어렵습니다. 사람을 물건처럼 대하는 언어에 노출된 당사자와 우리 사회 품격은 끝없이 추락합니다.
3) ‘신고’가 이웃을 분리하듯, ‘물량’은 사랑을 단절
앞서 ‘어려운 이웃을 신고하라’는 말이 이웃 사이에 거리를 만들고 약자를 감시 대상으로 만들 위험을 지적했습니다. 입양 현장에서 ‘물량’이라는 말 역시 이 같은 부작용을 낳습니다.
입양 부모와 아이의 만남은 사랑과 헌신을 전제한 인격적 결합입니다. 그런데 이를 ‘물량 소진’ 관점으로 접근하면 입양은 ‘가족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국가 행정 과업을 돕는 일’로 변질됩니다. 이런 언어 환경 속에서 아이는 부모에게 온전한 인격체로 다가가기보다, 국가가 처리하지 못한 ‘숙제’를 떠맡는 모양새가 됩니다.
4) 다시, ‘살림’의 언어로 돌아갑시다
사회사업가는 ‘언어와 표현으로 실천 방향을 바꾸는 사람’입니다. 효율성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생명의 가치를 훼손하는 ‘죽임의 말’을 진지하게 돌아봅니다. “이번 분기에는 더 많은 아이가 따뜻한 품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하는 것과 “물량을 소진했다.”라는 말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존엄의 강이 흐릅니다.
사람을 살리는 말, 당사자의 품격을 높이는 ‘살림’의 언어를 사용합시다.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우리 용어가 곧 우리 사회의 수준임을 기억합니다. 사회사업가다운 기품 있는 언어사용이 전문성의 시작입니다. 그 사람의 기품은 말에서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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