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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이랑 한파랑 싸우면 누가 이길까?

아이들의 시선과 해석은 참 투명해서 놀라는 순간들이 있다. 지난 주말 지금의 폭염이 가진 무서운 위력을 느꼈던 아이가, 땀을 뻘뻘 흘리며 대뜸 질문을 한다. 


“엄마! 폭염이랑 한파랑 싸우면 누가 이길까?” 


나는 어릴 적 해와 바람의 한판 승부를 떠올리다 폭염이랑 한파는 한편이라서 안 싸워, 우리가 지구를 힘들게 하고 있는 거지라고 말하며 입장을 바꿔 질문했다. 너는 폭염이 힘들어? 한파가 힘들어?라고. 아이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나는 폭염이 힘들어. 정말 숨이 막히는 것처럼 더워라고 이야기한다. 


맞다. 정말 숨이 막힐 수 있는 날씨다. 어느새 사람잡는 폭염이라는 수식어가 당연하게 읽히는 시대가 되었다. 폭염으로 바싹 마른 땅과 나무로 유럽의 산불은 잡힐 줄 모르고 매일 뉴스의 강도를 갱신하고 있는 중이다. 세상 종말을 보는 것 같다고 말하는 주민들, 언제까지, 어디까지 덮칠지 알 수 없는 거대한 재난이다. 우리나라의 상황도 재난의 연속이다. 폭우로 쏟아지는 흙더미에 깔려 사망한 현장 노동자, 작년에는 산불 올해는 물난리가 임시숙소를 덮쳐 다시 또 이주해야 하는 안동 주민들, 폭염 속 밭일을 하던 외국인노동자의 죽음 등 사람잡는 폭염의 위력이 더 두려운 여름이다.  


영화 <설국열차>는 기상이변으로 올라가는 온도를 내릴 수 있는 기술이 있다고 기대했지만 전 세계는 꽁꽁 얼어버렸고, 모든 생명체는 멸종한 빙하기 지구로 시작한다. 빙하기 대륙을 17년째 달리고 있는 열차를 생태계라 부르며 그 속에 살고 있는 인류의 2031년 스토리. 영화가 아닌 오늘날 나의 현실은 어떤가? 기후재난의 엔진은 갈수록 가속화되고있고, 2030탄소절감, 2050탄소중립이라는 대안은 허구처럼 떠도는 사회로 보인다.  


영화는 끊임없이 말하고 있었다. 열차의 앞칸을 차지하고 풍요를 누리는 사람들은 이 생태계의 지속을 위해 균형과 질서가 필요하다고. 그러니 자신이 위치한 곳에서 주어진대로 살면 된다고 말이다. 뭔가 이상하다. 균형과 질서는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질문이 생긴다. 이 질서는  누가 정한 결정인가? 사람마다 정해진 삶의 위치는 누가 정했나? 


모두의 안녕을 위한 것처럼 포장하고 있지만 고약한 폭력이 보란듯이 얼굴을 들고 있는 영화 <설국열차>를 보며 나는 우리 사회의 모습과 겹쳐 그려졌다. 소수의 성장을 쫓아 모두의 안녕을 기대하기보다는 다수의 안녕을 살피는 사회가 절실하다. 불평등한 기후위기, 기후재난이 계속되고 있는 현실이지만 AI를 비롯한 기술개발과 성장으로 향하는 우리 사회는 열차의 엔진을 위해 아이들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설국열차와 무엇이 다를까.  


그럼에도 희망은 끊임없이 기후정의를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탄소감축 계속 미루면… 우리 미래는 누가 지키는가. 2026. 07.27.> 아기기후소송 청구인 한제아(중학교 2학년)는 말한다. “감축이 어렵다는 이유로 계속 미룬다면, 감축이 더 어려워진 미래엔 누가 그 책임을 질것인가. 지금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은 언제가 자리에서 물러나지만 결정의 결과는 어린이, 청소년이 살아갈 수십년이 이어진다. 우리에게 남겨야 할 것은 더 큰 부담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미래”라고. 


숨 막히는 폭염의 힘이 두려운 우리 아이의 시선과 질문에서 기후행동으로 말하는 청소년 한제아의 운동까지 그 모든 과정이 나는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우리의 몫은 아이들이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미래를 위해 근본적 전환을 위한 한 발을 움직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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