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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과 수리를 구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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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는 쓰레기가 없어. 

아주 아주 먼 옛날, 사람이 살기 전에는 자연에 쓰레기가 없었어. 진짜 하나도 없었어. 

모든 건 땅에서 자연스럽게 자라나고 사라지며 쓰였지. 


필립 번팅의 <지구는 네가 필요해!> 그림책 첫 페이지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그렇다. 예전에는 모든 것들이 다 자연스럽게 자라고, 사라지는 순환 생태계를 이루고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을 둘러보면 어떤가. 세계까지 말하지 않아도 우리나라 곳곳에도 거대한 쓰레기산이 하늘을 찌를 듯 쌓여가고 있고, 바다에는 점점 더 많은 쓰레기섬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현실이 이렇다 할지라도 당장 우리집 앞에 쓰레기산이 없으니 상상이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 올해 수도권 쓰레기 직매립 금지가 시행되면서 ‘어? 우리동네에는 소각장이 없는데? 우리동네 소각장으로 쓰레기를 다 보내는 건 반대야! 서울에서 만든 쓰레기를 왜 지방으로 보내는거야!’ 등 이제서야 우리가 배출하는 쓰레기가 사회에 존재감을 드러내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쓰레기의 존재감을 느낀 정부는 쓰레기를 더이상 매립할 땅이 없어 소각하자는 것이고, 기존 소각장은 수용할 수 있는 쓰레기의 양이 있을테니 적정한 소각장 수와 규모를 물어 대책을 만든다는 방식으로 대화가 이어졌다. 이는 곧 수도권에서 나온 쓰레기가 지방 사설 소각장으로 향하는 상황까지 이어졌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껏 우리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의제를 인식하고 해결해가는 과정이 이런 방식이지 않았을까? 집약된 모습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우리에게 우선되어야 할 질문은 따로 있다. 오늘 이 넘쳐나는 쓰레기에 대한 대안이 직매립 말고, 소각하면 진짜 해결가능한가?라고. 매립지가 사라졌을 수 있지만 배출이 사라지지 않았다. 모르고 안하는지, 알고도 안하는지 단정지을 수 없지만 이제 피할 수도 없고, 피해서도 안되는 질문이다.  


<제로웨이스트 도시를 위한 안내서>는 지구는 언제나 제로웨이스트 원칙에 따라 순환구조속에서 존재해왔다고 이야기한다. 수천년동안 산업시대 이전까지는 ‘폐기물’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이다. 왜냐면 대부분의 폐기물은 다른 공정의 투입물이 되어 자원의 가치가 순환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자연이 오랜 진화를 통해 수행해온 방식이며, 오늘날 인류는 의도적인 설계를 통해 이를 실현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고 말한다. 제로웨이스트는 단순히 경제 활동을 환경파괴와 분리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으며, 궁극적으로는 미래세대를 위한 회복력과 자연 자본을 구축하는 일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말이다.  


그럼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나는 스스로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소비의 자리에서 시작하되, 궁극적으로는 생산과 제도의 변화로 연결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소비패턴과 절대적 양이 줄어들지 않는데, 분리배출과 소각을 대안이라고 강조하는 건 눈가리고 아웅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진짜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로 가는 우리 삶의 소비에 변화가 필요한 때다. 둘러보면 할 수 있고, 해볼만한 방식들이 없지않다. 지금과는 다른 관점, 새로운 시선과 운동으로 스스로의 삶을 넘어 이웃의 삶으로 연결하고, 사회적 생태계를 다시 설계하는 현장이 있다. 알면 사랑한다는 최재천 교수의 말을 나대로 번역해보자면 ‘알면 행동한다’고 읽힌다.    
  

우리는 낡거나 헌 물건을 고치는 행위를 수선이라고 한다. 낡거나 헌 물건을 버리고 새로 사는 것이 너무 편해진 요즘은 동네 수선집을 찾아보기도 어렵다. 그런 내가 요즘 수선의 재미에 푹 빠져있다.  한번 시작하면 빠져나올 수 없다는 <죽음의 바느질 클럽>이 있다. 복태와 한군이 치앙마이에서 배워 온 바느질 기법을 익혀 전파하는 사람들도 늘어가고 있다. 우리는 새로 사는 것보다 더 큰 즐거움이 있고, 살림에도 보탬이 되는 수선의 매력을 알아가는 중이다.  


복지관에서 주민 수선 워크숍을 열었을 때다. 사람들이 모이는 워크숍에는 관심을 두지 않던 한 어머니가 아이 겨울 패딩을 안고 들어오셨다. 찢어진 패딩을 보여주며, 어떻게 하나 걱정했는데 다행이라고, 오늘 잘 배워보겠다라고 하셨다. 우리는 수선의 즐거움을 공동의 감각으로 나누는 기쁨을 누렸다. 수선은 옷만 고치는 일이 아니었다. 나도 그때 어깨너머로 배운 덕에 옷에 묻은 얼룩이나 구멍을 메우는 정도의 수선을 지금도 하고 있다. 내가 가진 것을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것으로 만드는 즐거움을 지역주민들과 함께 알아가면 좋겠다. 유행을 쫓아가는 버거운 삶보다, 나의 속도로 무늬를 만드는 수선의 즐거움을 알리면 좋겠다. 


또 하나는 수리권이다. EU는 2024년 6월 수리권 지침을 채택했고, 회원국들은 올해 7월 31일부터 이를 국내법으로 시행하고 있다. 수리를 개인의 개인이 아니라 기업의 의무로 옮긴 것이다. 얼마 전 우리 주택에서 공용으로 쓰던 제습기가 고장이 났다. 자체적으로 수리를 해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고, AS를 신청하기로 했다. 그런데 AS를 신청할 때는 그 어떤 결심이 필요했다. 괜히 신청했다가 수리비용만 비싸고, 제대로 활용이 안되는 경우가 많으니 새것을 사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것 같다는 사고의 흐름으로부터 다른 결심말이다. 아직 고칠지 버릴지가 여전히 각자의 몫으로 남아 있는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는 아직 [순환경제사회 전환 촉진법]에 수리 관련 조항이 있지만 권고 수준에 머물러 있다. 


마포구 망원동에는 무엇이든 수리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수리를 배워가며 수리하는 수리상점 곰손이 운영되고 있다. 이 곳에서는 살이 부러진 우산을 고치고, 구멍난 양말을 깁고, 애착장난감을 고쳐 움직이게 하는 등 우리가 소비한 자원을 오래도록 쓰는 방식으로 지구를 돌보고 나를 돌보는 수리권 실천이 이뤄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토록 귀한 수리의 기술은 지역에서 숨어있는 주민의 재능이자 역량의 연결로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지역 어디서든 가능한 행동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알면 행동한다. 제로웨이스트를 향한 우리의 시선과 운동이 제로웨이스트 도시로 연결되길 바란다. 수선과 수리를 구실로 주민과의 만남을 시작해보길 제안한다. 불평등한 기후위기로부터 대응과 회복의 전략에 제로웨이스트 도시는 분명 단단히 한 몫을 담당할 것이다. 이 글의 시작을 열었던 그림책 <지구는 네가 필요해!>의 마지막 페이지로 이야기의 매듭을 짓는다. 


너와 나, 우리 가족과 친구들은 모두 작고 아름다운 행성인 지구에 잠시 왔다 가는 관리인일 뿐이야.

지구는 우리의 유일한 집이야. 그러니 우리가 함께 돌봐야 해. 우리의 소중한 지구를 깨끗하게 해줘.

얼마 지나지 않아 더 많은 사람들이 너와 뜻을 함께 할거야. 


좋은 사람들이 좋은 일을 할 때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

네가 그 변화를 만들 수 있어. 

지구는 네가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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