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 본문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 정말 그럴까?

  • 속도
  • 속력
  • 방향
  • 사이클로이드
  • 변위
  • 계단식성장허구
  • 새로운시도
  • 성장
  • 성과
  • 좋은태도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 정말 그럴까?



정합적 실천의 정언(定言)으로 널리 쓰이는 말이 있다.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 이 말은 대개 느리게 가더라도 올바른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이 말은 실적에 근거한 성과주의가 요구되는 시대에 지친 사람들에게는 위로의 말이고, 정합적 실천을 지향하는 사람들에게는 지향의 논리이다.

 

필자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천천히 가더라도 단단하게, 정합적으로, 애자일(agile) 실천의 계단식 성장을 이뤄가야 한다. 대부분, 경쟁에서 자기 삶을 책임져야 하는 우리의 삶은 고단하다. 인간의 삶도, 생태계도 너무 빠른 변화에 지쳤고 헝크러져 있지 않은가.

 

한편,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라는 말에 동의할 때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이 말을 참과 거짓으로 증명할 수 있는 명제라고 전제하면 속도와 방향의 상관성을 살펴봐야 한다. 방향이 중요한 건 맞는데 그럼 속도는 중요한 게 아닌 건지? 방향과 속도는 상호 관련성이 없는 건지. 속도와 방향의 관련성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매개 요인은 없는 건지.

 

먼저, 이 글을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는 말을 참인 명제로 전제하고 쓴다. 이 말이 거짓이라면 삶은 너무 고단하고 힘들어질 테니까. 반면 방향이 정해졌을 때 속도가 느려지면 우리 삶은 여유 있고 덜 힘들어지는 것일까도 생각해 보려 한다. 적정속도에 맞게 변속하지 않는 자동차가 갖는 과부하처럼 말이다.

 

속도와 속력의 차이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는 명제에 대해 생각하며 관련 자료를 서치하다가 재미있는 포스팅 하나를 발견했다.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전문을 읽고 싶은 분은 링크를 참조하시길.

 

속력과 속도를 구분하기 위해서는 이동거리(distance)와 변위(displacement)에 대해 알아야 한다, 어느 물체가 처음 위치에서 나중 위치로 움직였을 때, 이동 거리는 물체가 이동한 실제 경로의 총 길이이고, 변위는 나중 위치와 처음 위치 사이의 직선거리를 뜻한다. 어느 물체가 [그림 1]과 같이 파랑색 경로를 따라 처음 위치에서 나중 위치로 움직여갔다고 생각해 보자.



그림1  이동거리와 변위


[그림 1]에서 이동 거리는 파랑색 경로의 전체 길이인 520m가 된다. 이에 비해 변위의 크기는 나중과 처음 위치 사이의 직선 거리이다. [그림 1]과 같이 나중 위치와 처음 위치 사이의 거리가 270m라면 바로 변위의 크기가 270m가 된다. 이때 속력은 전체 이동거리를 경과시간으로 나눈 값이고, 속도는 변위를 경과시간으로 나눈 값이다.

 

변위는 출발점과 도착점의 위치에 따라 값이 달라진다. 실제 이동하는 경로가 구불구불 하더라도 처음과 나중 위치만 같으면 동일한 값을 갖게 된다.



그림2  속력과 속도의 차이


예를 들어 그림2에서처럼 어느 자동차가 처음 위치에서 출발하여 이동거리가 12km인 동네 한바퀴를 도는데 20분이 소요됐다고 가정하자. 이때 속력은 12km20분으로 나눈 값인 10m/s이 된다. 그림2의 경우 변위는 0이므로 속도는 0이 된다. 만약 속도가 0 m/s 였습니다라고 답한다면 질문을 한 사람은 차가 주행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오해하고 황당해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보통의 경우 속력과 속도를 엄밀하기 구분해서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단순히 어느 물체의 빠르기 정보만이 필요한 경우에는 속도보다는 속력을 사용해야 한다.

 

속력과 속도의 단위는 m/s로 같다. 그러나 속력은 이동거리를 경과시간으로 나누고 속도는 변위를 경과시간으로 나눈다. 그러므로 속력은 어느 시간 동안 이동 경로 상의 빠르기에 대한 정보를 표현하는데 유용하다. 이와 달리 속도는 이동 경로보다는 나중과 처음 위치 사이의 빠르기와 방향 정보를 표현하는데 유용하다.

 

위의 포스팅을 간결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속도는 방향을 내포하고 있지만, 속력은 거리 대비 시간만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물리법칙에 따라 속도와 속력을 구분하게 되면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는 명제는 속력보다 방향이 중요하다.’라는 말로 수정해 사용하는게 적확하다. 물론 일상생활에서는 혼동된 개념으로도 충분히 이해 가능하지만, 이 글에서 속도와 속력을 구분한 이유가 있다. 처음 글에서 언급했듯, 방향이 중요하다면 속력은 방향과 상관성이 없는 건지 살펴보기 위해서다.


가장 짧은 길이 가장 빠른 길은 아니다.


 

그림3  사이클로이드 곡선 생성 원리 (출처: 위키피디아, Zorgit)


  1. 사이클로이드(cycloid)는 바퀴(wheel)라는 의미의 고대 그리스어(kuklos)에서 나온 말로 회전하는 바퀴 상의 한 점의 궤적을 표현한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 예를 들면, 그림3을 자전거 바퀴로 가정했을 때 자전거 바퀴의 옆면 어딘가에 점을 하나 찍고, 바퀴를 앞으로 굴렸을 때 다시 돌아오는 점까지의 곡선의 자취가 사이클로이드 곡선이다



    그림4  사이클로이드 곡선 실험


    사이클로이드 곡선은 최단 시간 강하 곡선으로, 말 그대로 가장 짧은 낙하 시간을 갖는 곡선을 나타낸다. 이는 사이클로이드 곡선 위의 물체가 초반에 받는 중력가속도가 직선보다 크기 때문에 빠르게 낙하하게 되고, 기울기가 완만한 후반부에서는 관성에 따라 속도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림4를 보면 직선 보다 곡선으로 내려오는 공이 더 빠른 속도로 하강함을 알 수 있다. 사이클로이드 곡선은 또 다른 특이한 성질도 있다. 바로 같은 곡선상에서는 어떤 점에서 출발해도 가장 낮은 위치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모두 똑같다는 것이다. 이것을 '동시 강하 곡선' 또는 '등시 곡선'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면 워터 슬라이드 파크는 사이클로이드 곡선을 적용한 하나의 사례이다. 워터 슬라이드 파크를 타본 사람은 알겠지만, 앞선 탑승자가 완전히 도착할 때까지 다음 탑승자를 태우지 않는다. 이는 사이클로이드 이론상 같은 곡선상에 있을 경우 어떤 점에서 출발해도 도착시간이 같아 발생할 수 있는 충돌의 위험 때문이다.

     

    사이클로이드 곡선에서 발견할 수 있는 건 가장 짧은 길이 가장 빠른 길이 아니라는 것이다. 직선은 인간이 만든 개념으로 자연상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이클로이드 곡선은 자연에서도 관찰된다. 독수리나 매는 먹잇감을 낚아채기 위해서 사이클로이드 곡선을 활용해 빠르게 지상으로 내려온다. 물고기들도 물의 흐름을 통한 이동 속도를 높이기 위해 비늘 모양을 사이클로이드 곡선의 형태로 진화시켰다.

     

    자동차 감속기 설계에도 사이클로이드 곡선에서 파생된 '에피사이클로이드(epicycloid) 곡선'이 활용된다. 이는 주어진 원에 외접하는 임의의 한 원이 주어진 원의 곡면을 따라 회전할 때, 외접원 위의 찍혀있는 한 점이 그리는 자취를 말한다. , 평면상에서 생성원이 그리는 곡선이 아니라, 다른 원의 곡면상에서 생성원 위의 점이 그리는 곡선이 된다. 자동차 감속기를 설계하는 과정에서는 기어의 톱니바퀴 모양을 손실률이 가장 적은 에피사이클로이드 곡선의 형태로 만들어서 효율성을 높인다.

     

    사이클로이드 곡선은 적용 사례에 따라 곡선률이 달라진다. 독수리의 활강, 물고기 비늘, 워터 슬라이드 파크, 활강, 시계, 자동차 등등 사례마다 적합한 값은 다르다. 이 말은 사이클로이드 곡선의 정답이 있지 않다는 의미이다. 사회사업 실천에 있어서도 사이클로이드 곡선과 같이 속도는 방향(도착점)과 상관성을 가진다. 어떤 곡선을 가질지, 적용할지는 주체의 결정에 따라 달라진다.

     

     

    계단식 성장의 허구

     

    찾아보면 사이클로이드 곡선이 활용되지 않는 분야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우리와 과학자들의 삶 깊숙이 들어와 있다. 물리적 법칙 뿐만 아니라 삶의 궤적에서도 사이클로이드 곡선을 찾아볼 수 있다. 성장에 있어 직선적 성장은 사실 쉽지 않다. 시간(노력)과 성정은 정비례하지 않는다.



    그림5  계단식 성장 도표


    계단식 성장을 도표화 하면 그림5와 같다. 이는 성장의 이해를 개념화한 것이지만 실제 성장은 위의 도표와 같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실제 성장은 속력보다는 속도가, 사이클로이드 곡선이 무수히 교차하는 과정이다. 이동거리가 100m인 날도 있지만 변위가 0m인 날도 있다. 독수리 같이 활강하는 날도 있고, 에스컬레이터처럼 느리게 내려가는 날도 있다. 실제 성장은 어제보다 못한 무수한 날과 유달리 잘한 보석 같은 나이 모인, 그런 날들의 총합이다.



    그림 계단식 성장 실제 https://brunch.co.kr/@arak/58


    이 글의 결론이다. ‘속력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속도(변위)는 방향과 궤를 같이한다. 방향에 따라 어떤 변위를 가질지 결정하는 게 중요하다.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는 것이다. 속도에 따라 시도하고 실패하며 계속 앞으로 밀고 나가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새로운 시도 자체가 성과이다.’ 노수현 선생님의 글에 동의한다.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으며 각자의 사이클로이드 곡선을 갖고 자기 속도로 나아가는 과정이 곧 성장의 과정이다.

     

    이러한 성장의 과정에서 견지해야 할 것은 태도. 좋은 태도를 갖는 건 본인이 가진 속도의 회복탄력성을 높인다. 좋은 태도란, 똑똑하고 능력있는 사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좋은 습관을 갖고 있다는 의미이다. 학습하는 태도, 피드백을 대하는 태도,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태도, 그리고 나와는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대하는 태도 등. 좋은 동료와 함께 한다는 건 좋은 습관을 가진 동료와 함께 한다는 의미이다. 좋은 태도 자체가 본인의 사이클로이드 곡선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겠다.

※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2.0 대한민국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댓글

댓글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