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y WISH지기
- 2026-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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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설명은 도착했나요?
칼럼리스트 소개
조에스더(엘컴퍼니 대표, 연세대학교 겸임교수)
사람을 이해하는 일과 사람에게 닿는 말을 오래 연구하며, 단절된 사람과 사람, 말과 마음을 연결해 온 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 의사, 판사, 검사, 교수, 정치인, 기업 CEO 등 다양한 전문가와 성인을 대상으로 커뮤니케이션, 인간관계, 감정관리를 주제로 강의와 컨설팅 진행.
칼럼 소개
AI는 점점 더 많은 일을 돕고 있습니다. 기록을 정리하고, 정보를 안내하고, 반복되는 업무를 덜어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만나고, 침묵 속 마음을 읽고, 신뢰감이 가득한 눈동자를 알아차리는 일까지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이 칼럼은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의 시선으로 복지 현장을 바라보려 합니다. AI 시대에도 왜 대면이 필요하고, 왜 공감은 자동화되지 않으며, 왜 설명과 경청의 힘이 더 중요해지는지, AI로 자동화된 기록에 다 담기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다양한 삶의 장면과 언어로 차분히 풀어내고자 합니다.
“제가 뭘 준비해야 한다고 하셨죠?”
“저는 해당이 안 되는 줄 알았는데 맞나요?”
필요한 서류도 알려 주고, 신청 절차도 차근차근 안내했지만 며칠 뒤 다시 전화가 와서 이렇게 말하는 일이 복지현장에서는 흔한 일입니다. 사실, 사회복지현장에서 근무하는 분들은 대체로 설명을 잘하는 편입니다. 반복해서 안내하고, 친절하게 가능한 한 상대가 알아듣도록 표현을 바꿔가며 설명함에도 불구하고 설명은 자주 어긋납니다. 그건 복지사가 설명을 못해서가 아닙니다. 복지현장의 설명 자체가 매우 어려운 조건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복지현장을 찾는 분들은 단순히 정보만 얻으러 온 사람이 아닙니다. 생계의 막막함, 돌봄의 무게, 몸의 아픔, 가족 간의 갈등, 외로움과 수치심이라는 무거운 마음을 양손 가득 안고 문을 두드립니다. 그런데 마음에 근심이 가득 차 있으면 새로운 정보가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귀로는 듣고 있지만 머릿속에는 다른 걱정이 맴돌기 때문입니다.
“내가 자격이 안 되는 건 어떡하지?”
“또 거절당하면 어떡하지?”
“이걸 못 챙기면 도움을 못 받는 건가?”
이런 생각들이 설명 사이를 가득 채우다 보니, 제도와 서류에 대한 안내는 정보가 아니라 또 하나의 '압박'이자 '벽'으로 다가옵니다. 현장에서는 매일 쓰는 "소득인정액", "증빙서류", "서비스 연계", "사례관리" 같은 말들이, 처음 마주하는 이들에게는 내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낯선 외계어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더구나 도움을 요청하는 자리에서 "잘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는 것은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순간, 왠지 모르게 작아지는 느낌을 받으니까요. '아까 설명해 주셨는데 또 물어보면 귀찮아하지 않을까?' '내가 너무 눈치가 없는 사람처럼 보이면 어쩌지?' 그런 미안함과 위축된 마음 때문에 이해하지 못했어도 우선 고개를 끄덕이곤 합니다. 어찌 보면 "네, 알겠습니다"라는 말은, 어쩌면 다 이해했다는 뜻이 아니라 "더 이상 묻기가 미안해서 일단 알겠다고 할래요"라는 마음의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복지 현장에서 설명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을 넘어 '도움이 실제로 그 사람의 삶에 도착하게 만드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제도와 서비스가 있어도, 당사자가 이해하지 못해 신청할 수 없다면 그 도움은 아직 세상에 없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복지 제도는 존재하는 것만으로 사람을 돕지 못합니다. 그것이 한 사람의 따뜻한 언어로 번역되어 그가 다음 걸음을 내딛게 할 때, 비로소 살아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좋은 설명은 제도의 언어를 삶의 언어로 다정하게 풀어내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증빙서류를 제출하셔야 합니다"라는 말 대신,
"지금 말씀해 주신 어려운 상황을 정부에 보여줄 수 있는 자료가 필요해요. 월급을 받고 계시면 급여명세서가 좋고, 소득이 없으시다면 그 부분은 다른 방법으로 저와 함께 확인해 봐요."라고 손을 잡아 주는 것.
"주민등록등본을 가져오세요"라는 말 대신,
"주민센터에 가셔서 '가족관계증명서 말고 주민등록등본 주세요'라고 말씀하시면 돼요."라고 구체적인 행동의 지도를 그려주는 것.
무엇보다 가장 좋은 설명은 '언제든 다시 물어볼 수 있는 안전한 분위기'를 선물하는 것입니다. 처음 만나는 제도와 복잡한 절차 앞에서 한 번에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니까요. 그러니 단순한 친절을 넘어, 상대방이 마땅히 가져야 할 '질문할 권리'를 되찾아 주는 것이 좋은 설명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설명 속에는 늘 이런 따뜻한 허락이 녹아 있으면 좋겠습니다.
“한 번에 이해하기 힘드신 게 당연해요. 언제든 다시 물어보셔도 괜찮습니다.”
“혼자 정리하기 어려우시면 다음 주에 저랑 같이 다시 봐요.”
좋은 설명은 '정확하게 뱉은 말'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에 '무사히 도착한 말'입니다. 내가 다 말했다고 해서 설명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상대가 온전히 이해하고, 마침내 다음 행동을 시작할 수 있을 때 설명은 비로소 목적지에 도착한 것입니다. 그러니 복지 현장에서의 설명은 단순한 안내를 넘어, 그 자체로 아주 귀한 복지의 과정입니다. 복잡하고 차가운 제도를 사람의 온기가 담긴 언어로 바꾸고, 불안한 마음을 토닥여 다음 걸음을 내딛도록 돕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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